K 레코드는 솔직히 서브 팝처럼 막 대박으로 흥하거나 그런 인디 레이블이 아니였습니다. 아 물론 모디스트 마우스나 빌트 투 스필이 메이저 정벅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빌트 투 스필은 안 짤리는게 신기함 (...) 역시 워너는 이런 면에서 똘끼가 넘쳐요.), K 레코드는 전설이 된 지금도 여전히 컬트적인 팬덤에 만족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 가보셨습니까, 완전 동네 구멍가게 홈페이지 포스입니다.
잠시 시간을 1980년대로 돌려보겠습니다. 하드코어 펑크 폭풍이 한바탕 지나간 후, R.E.M.과 소닉 유스, 미트 퍼펫츠, 허스커 듀 같이 구석에서 조용히 암약하던 괴짜 밴드들이 하드코어 펑크의 절규를 대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별다른 공통점이 없이 자기만의 음악을 했지만 (버즈을 우상시 하고 남부 음악의 흙 냄새와 예술적이고 시적인 뉴욕 펑크의 결합에 관심을 가졌던 R.E.M. 뉴욕 아방가르드에서 올라와 노이즈 실험을 선보인 소닉 유스, 하드코어 펑크의 무자비한 에너지를 팝에 녹이려고 했던 허스커 듀 등...) 마이클 잭슨로 대표되던 멋들어진 스타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했던 청춘들을 불러모았습니다.
K 레코드의 중심에 있었던 비트 해프닝도 그 흐름에 있었지만, 열광적인 편은 아니였습니다. 물론 당시 인디 록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밴드였지만 그 커뮤니티에서 머물다가 조용히 사그라들었습니다. 적어도 메이저로 나간 저 네 밴드하고는 위상이 다르죠. 하지만 그들은 저 네 밴드가 메이저로 나가는 동안 조용히 배후를 조종하면서 인디 씬의 토양을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이들이 없었다면 벡, 빌트 투 스필, 모디스트 마우스는 좀 늦게 빛을 보게 됬을겁니다.
예술 대학에서 모인 두 남자 (캘빈 존스, 브렛 렌스포트)와 한 여자 (헤더 루이스)가 모여 만든 비트 해프닝의 음악 세계에 대해 평론가들은 트위 팝 혹은 인디 팝이라 부릅니다. 오렌지 쥬스를 위시한 스코틀랜드 포스트펑크 밴드들의 상큼한 음악에 시작된 이 장르는 기타+드럼+베이스라는 기본 밴드 포맷을 이용해 수줍은듯 하지만 가끔 대담한 청춘의 감수성과 에너지를 토로하는 팝스를 만들어냈습니다. 비트 해프닝은 그런 트위 팝의 선구자적인 밴드였습니다.
[Jamboree]는 이들의 일관된 첫 걸작이라 불리는 앨범입니다. 1집 세임 타이틀은 23곡에 40분이라는 경이적인 재생 시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곡에 집중하기엔 다소 산만한 앨범이였다는 평이였습니다. 2집은 좀 더 일관적이고, 전통적인 곡 구조를 도입하려고 했다는게 느껴집니다. (이후 앨범으로 가면 이 성향이 강해져서 마지막 앨범엔 9분짜리 곡도 등장합니다.)
앨범은 정말 게으르고 단순합니다. 기타는 반복적인 리프로 지저분하고 시끄럽게 연주하고 캘빈 존스의 보컬은 귀찮다듯이 음정도 안 맞추고 게으르게 곡 속을 뛰놀고, 드럼은 배음에 대한 고려 없이 그냥 뚱땅뚱땅거립니다. 무척이나 아마추어적입니다. 처음 듣는 이에겐 무척이나 생경하기 그지 없습니다. 관련된 비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그들은 공연 리허설를 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리허설을 하면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Bewitched'는 기타가 이상하게 꼬여버린 상태에서 계속 연주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기본적인 자세가 펑크의 DIY에서 왔다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실황을 녹음한 마지막 곡 'The This Many Boyfriends Club'은 그런 아마추어적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고집스러운 곡입니다.
이런 황당한 첫 인상과 달리, 이 앨범은 의외로 낭만적입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이 써내린 곡들은 마이너 스레트나 크램스 같은 괴팍하게 변형된 펑크 뿐만이 아니라, 시드 바렛 같은 게으른 사이키 포크와 샹그리라 같은 고전적인 팝스, 벨벳 언더그라운드 같은 거라지 록도 사랑하는 면모가 담겨 있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Indian Summer'나 'Drive My Car' 곡은 이들이 분명 과거 60년대 게으름뱅이들의 낭만주의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트 해프닝의 게으르고 시끄러운 팝스는 여러모로 대안적인 존재였습니다. 위에도 언급한 90년대에 메이저에 진출했던 소위 얼터너티브 밴드들이 다소 날 선 시선을 담아냈다면 비트 해프닝은 청춘의 권태와 떨림을 지저분하지만 낭만적으로 표출했습니다. 그들이 소박하게 인디에 머물다가 끝난 이유도 거기에 있을겁니다. 그들은 유명해지기엔 너무 수줍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언더에만 머물러도 세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였고요. 하지만 그런 고집스러움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P.S. 이 앨범이 만약 당시에 조금이나마 빛을 보게 됬다면 아마 커트 코베인의 공이 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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