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로 쉬프린은 영화 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특히 영화광들 사이에서 블리트와 미션 임파서블, 더티 해리의 사운드트랙은 꽤나 유명하죠. 긴박감과 훅이 넘치는 테마와 그와 대조되는 깔끔한 편곡과 풍윤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헨리 만시니와 버나드 허먼에서 시작된 헐리우드 영화 사운드트랙 계보를 잇고 있으면서 동시에 존 윌리엄스와 한스 짐머같은 정통파 작곡가부터 대니 알프만이나 욘 브리온 같은 개성 넘치는 작곡자 같은 후배 영화 음악 감독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랄로 쉬프린이 본격적으로 영화 음악에 뛰어든 시기는 클래식 할리우드가 끝나가던 1960년대였는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스타 워즈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한동안 할리우드는 세상의 어두운 부분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더티 해리], [블리트], [대부] 같은 영화들이 그렇죠. 랄로 쉬프린의 이름을 알린 시점도 이 시기와 일치합니다.
따라서 음악 성향도 직계 선조라 할 수 있는 헨리 만시니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베니 굿맨이나 듀크 엘링튼 같은, 스윙이나 오케스트라 재즈 같은 부드럽고 백인풍의 재즈에 영향을 받은 헨리 만시니와 달리, 랄로 쉬프린이 마일즈 데이비스나 디지 길레스피 같은 좀 더 강한 싱코페이션을 추구했던 모던 재즈/비밥 세대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실제로 랄로 쉬프린이 써내린 유명한 곡들은, 큰 영향을 받은 헨리 만시니보다 템포가 강하고 긴박감 넘치는 곡들이 많았습니다. 거기다가 쉬프린 자체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음악원에서 클래식 공부를 한 뒤 (연주자로써 그의 포지션은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 신이치와 비슷합니다. 피아노 주자+오케스트라 지휘자랄까요.) 디지 길레스피의 피아노 세션으로 녹음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전형적인 WASP 문화권의 영향권에서는 떨어져 있었다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겁니다. (클래식 음악 쪽도 독일보다는 프랑스 인상주의 (모리스 라벨)의 영향이 강합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랄로 쉬프린의 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 요소로 라틴 음악, 특히 보사노바와 탱고가 있습니다. 다만 호안 질베르트에서 알 수 있듯이 보사노바는 기본적으로 세밀하고 잔잔한 터치의 비트로 오밀조밀한 서정을 만들어내는 음악인데, 랄로 쉬프린이 보사노바를 쓰는 방법은 잔잔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세밀한 톤의 비트는 유지하되, 탱고의 농밀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고 할까요. 거기다가 쉬프린은 극적이지만 완급을 알고 있는 오케스트라를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굉장히 대책없이 뻔뻔하게 로맨틱한 음악이 탄생합니다.
그래서 솔로 데뷔작인 [Piano Strings And Bossa Nova]은 어떤 음반이나면, 저 설명 그대로입니다. 'You And Me'나 'Rapaz De Bem', 'Insensatez' 같이 정말 대책없이 뻔뻔하게 로맨틱할때도 있고, 'Maria' 같은 흥미로운 실험도 있으며 후일 사운드트랙 작업으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매김한 긴장감 넘치는 곡들도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라운지 뮤직의 전신이라고 할만한 요소들이 가득한 음반입니다. (스테레오랩이나 포티쉐드가 이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앨범이 가볍고 산뜻하다는 느낌인데, 봄맞이 용으로 사놓길 잘 한 것 같습니다.
'Headphone Music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くるり - [The World Is Mine] (2002) (0) | 2011.05.18 |
---|---|
Beat Happening - [Jamboree] (1988) (0) | 2011.03.22 |
Manic Streets Preachers - [The Holy Bible] (1994) (4) | 2011.03.02 |
Yann Tiersen - [L'absente] (2001) (0) | 2011.02.20 |
Nine Inch Nails - [The Downward Sprial] (1994) (0) | 2011.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