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荒井由実 - [ひこうき雲] (1973)

giantroot2010. 11. 25. 22:30

2010/11/18 - [headphone music/리뷰] - Yellow Magic Orchestra - [ソリッド・ステイト・サヴァイヴァー], [浮気なぼくら] (1979, 1983)


비행기 구름 거리의 낭만

아라이 유미 (혹은 마츠토야 유미)는 토드 런그렌과 비슷한 시기에 알았던 이름인데 아버지의 일본 오디오 잡지에서 유밍의 [FROZEN ROSES] SACD 버전을 극찬하는 글을 읽고, '누구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게 그 시작이였다. 당시 나는 10살이였고, 한국에서 일본 음악은 라르크나 차게 앤 아스카, 엑스 재팬 같은거만 찔끔찔끔 나오던 때였다.

당연히 유밍의 작업들을 접할 기회는 없었고, 그녀가 일본에서 뭘로 얼마나 유명한지, 그녀 뒤에 누가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머리가 굵고 이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아 그게 그거였구나' 알게 되었지만. (참고로 야마시타 타츠로도 그 때 처음 알았다.) 이 앨범은 그 아라이 유미의 첫 앨범이다. 잠깐 부연을 하자면 아라이 유미는 1976년 결혼할때까지 썼던 이름이고, 그 이후론 마츠토야 유미로 활동했다.

일본의 서구 동경은 전세계가 아는 사실이다. 한달전 일본 여행을 갔을때,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 중 하나가 서구 문물를 자신들의 전통으로 소개하고 판다는 것이였다. 푸딩과 타르트, 카스테라가 버젓이 '150년의 전통' 운운하는 홍보문구를 달고, 아케이드가 도시의 명물로 소개되는 장면은 평범한 대한 남아인 나에게는 여러모로 쇼크였다. 책과 간간히 들어오는 일본 문물들로만 간접적으로 접하다가 실제로 직접 확인했을때는 여러모로 당혹감을 느꼈다. 일본에서 서구 문물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바라지만 온전히 될 수는 없는' 심정-외경심?-아니였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아라이 유미의 첫 앨범을 들으면서 먼저 느꼈던 감수성도 이런 서구 동경에서 우러나오는 외경심이였다. 하긴 아라이 유미의 포지셔닝 자체도 서구 문물를 동경하는 부르주아 엄친딸 아가씨였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모던 걸의 70's 재래라고 해야 할지? 그녀의 일화들을 보면 기모노집 2녀로 태어나, 6살때 피아노 배우고 (위의 앨범 커버도 클래식 악보를 떠올리게 한다.) , 11살에 샤미센을 배우고, 13살에 베이스를 배우고 중딩 때 이탈리아 레스토랑 캔티에서 저명한 문화인들과 어울리고, 17살에 작곡자로 데뷔하는 비범하고도 뭔가 패배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일화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그녀는 미대 출신에 그림도 썩 그린다.)

아라이 유미가 음악 커리어를 시작할 당시 영미권 음악의 대세는 싱어송라이터였다. 캐롤 킹, 로라 나이로, 캣 스티븐슨, 엘튼 존 같은 뮤지션들이 데뷔하거나 대표작을 냈으며 부드러운 멜로디와 아름다운 화음, 잔잔한 편곡과 서정적인 가사로 혁명에 지친 청춘들을 사로잡았다. 아라이 유미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라이 유미는 캐롤 킹하고 많이 닮아 있다. 사적 감수성을 중점으로 삼는 점, 피아노가 주 악기라는 점, 심지어 작곡자->가수 데뷔라는 루트도 비슷하다. 다만 룻시한 뿌리를 드러내는걸 주저하지 않았던 캐롤 킹과 달리 아라이 유미는 말그대로 '정제', '순수'라는 말이 어울리는 음악을 들려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첫 트랙 <ひこうき雲>을 들어보자. 아련한 오르간, 앳되지만 품위있게 감정의 고저를 처리하는 유밍의 목소리, 또각또각 멜로디를 연주하는 피아노, 엄정한 현악 연주, 어느 순간 치솟는 비트를 우아하게 처리하는 드럼, 담담하지만 쓸쓸한 가사... 이 곡은 평균적인 동아시아 남성들이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청순한' 동양적 여성성과 (살짝 모노노아와레도 느껴지는) 일본식 순정적 서정, 서구 문물에 대한 소녀적인 동경이 품위있는 당대 영미권 팝스와 클래식한 편곡에 곱디곱게 블렌드되어 담겨져 있다. 한마디로 이 곡은 유밍 그 자체다.

이어지는 곡들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미 헨드릭스에게 영감을 받은 당당한 로큰롤 <恋のスーパー・パラシューター> 정도를 제외하면, 이 앨범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자신만의 순수함을 만들어나간다. 가슴이 무너지는 도입부를 지닌 <空と海の輝きに向けて>, 조바꿈을 활용해 소녀의 순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きっと言える>, 미묘한 감수성을 뽐내는 <ベルベット・イースター> 등이 그렇다. 이런 음악들을 가지고 아라이 유미는 청승과 과장으로 가득했던 당시 일본 음악 씬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이런 깨끗하고 우아한 음세계를 만든 건 물론 17살부터 곡을 쓰고 다닌 엄친딸 아라이 유미의 작곡 실력도 있겠지만, 편곡에 참여한 백밴드 캬라멜 마마와 프로듀서 무라이 쿠니히코의 공이 크다. 캬라멜 마마가 누구냐고? 핫피 엔도로 전설이 되고, 더 후일 YMO으로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서게 되는 호소노 하루오미가 결성한 백밴드다. (후일 캬라멜 마마는 틴 팬 앨리로 개명하지만 길어지므로 생략한다.) 

이미 2년전 [風街ろまん]에서 일본적 록 음악을 정립해버린 호소노 하루오미는 이 앨범에서 자신이 정립한 방법론을 도입해 여성 가수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다. (<紙ヒコーキ>는 [風街ろまん]에 가까운 곡일 것이다.) 그는 여백의 미학과 음의 공간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해 아라이 유미의 곡과 목소리를 살려내고 있다. 이 앨범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된 요소는 없다. 모든게 완벽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짜여져 있다. '완벽'이라는 말은 비평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에게 영화 비평을 가르친 교수가 그랬지만, 정말 이건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이건 들어보면 안다.

어떤 평자는 이 앨범을 보고 한순간에만 낼 수 있는 무언가가 오롯이 담긴 앨범이라고 했다. 그 말이 백배 맞다. 누구나 청춘은 딱 한번 밖에 오지 않는다. 아라이 유미(와 제작진)는 그 시기에만 가질 수 있었던 서구동경적인-소녀심을 제대로 캐치해 이 앨범에 담아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