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 Test/리뷰

스플린터 셀: 컨빅션 [Tom Clancy's Splinter Cell: Conviction] (2010)

giantroot2010. 7. 18. 00:17


다소 아쉬운 절충적 잠입 액션 게임


스플린터 셀은 전통적으로 잠입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컨빅션 이전의 스플린터 셀은 빡빡한 난이도, 오로지 잠입 위주, 무쌍 금지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모 리뷰의 말을 빌리자면, 이 시리즈는 "세계에 얼마 안 되는 잠입액션 프랜차이즈"로 톰 클랜시라는 네임과 더불어 코어한 팬층을 모았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스플린터 셀 시리즈는 초심자가 손대기 힘든 작품으로 손꼽혀왔다. (나 역시 이 시리즈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어떤 게임인지는 알고 있다.) [스플린터 셀: 컨빅션]은 다르다. 거의 다 완성했다가 밥상 뒤집기를 시전했다는 소식처럼 이번 작품은 변화를 골몰한 작품이다. 

컨빅션의 특징은 '선택의 다양함'이다. 게임 디자인이 전반적으로 잠입만 고집하고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당신이 잠입을 해서 아무도 사살하지 않고 몰래 지나가던가, 아니면 면전에서 있는 족족 쏴죽여 진행해도 상관 없다. 그렇다해도 코어 게이머들의 걱정과 비난과 달리, 컨빅션에서 잠입은 여전히 중요한 게임이다. 다만 '들키지 않는 걸' 목표로 했던 전작들과 달리, 컨빅션은 '들키면 곤란하겠지만 그래도 진행가능'이라는 상황을 열여젖혔을 뿐이다.

선택의 다양성이라는 모토는 게임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으라면 목표 지정 후 처형과 그림자라는 요소를 꼽을 수 있다. 맨손 격투로 적을 쓰러트리면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보상인 전자는 컨빅션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적을 건드리지 않고 진행해야 했던 기존 시리즈에서는 상상도 못 할 요소다. (물론 제약은 있어서, 한꺼번에 4명을 처리하기는 좀 힘들다.) 반면 후자는 전통적인 시리즈의 요소, 잠입를 상징하고 있다. 여전히 샘 피셔는 들키면 안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고, 그림자는 그 점에서 중요한 잠입 장소로 자리한다.

이 둘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다. 어둠 속에서 숨어있다가 적 하나를 맨손 격투로 처치한 뒤, 눈앞에서 다른 적들을 처형하거나, 전면전을 벌이다가 어둠 속에 숨어들어 기회를 노릴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컨빅션은 스피디하면서도 화끈하다. 하지만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다. 한마디로 컨빅션은 성공한 '절충적'인 잠입 액션 게임이다.

하지만 밥상 뒤집기의 폐해가 없는 것도 아니다. [스플린터 셀: 컨빅션]은 전반적으로 밀도가 낮다. 이야기나 스테이지 구성이나.

우선 이야기가 의외로 소품이다. 물론 미국 대통령이 생사 문제가 달린 중대사를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이게 엄청난 스케일로 확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은 배경은 철저히 워싱턴 DC와 그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작 중 시간도 하루 정도다. 빈번한 과거 회상도 한 몫한다. 전작들이 블록버스터였다면, 컨빅션은 대통령 암살 음모를 다룬 실내(여기서 실내는 미국 동북부)극이다.

이 점 때문일지는 몰라도, 이야기가 흥미롭지만 전반적인 박력이 부족하다. 충격적인 반전과 회상, 떡밥을 던지며 도입부은 괜찮았다. 허나 본 궤도에 들어서면 조금 아쉽다. 본작의 최종보스인 톰 리드는 너무 자동운항으로 음모를 진행하고, 좋은 악당이 가질법한 카리스마나 매력도 부족하다. 3류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산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중요한 악당이 한 명 더 있긴 하지만, 그가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비굴함과 오만함을 모두 보여주는 조무래기 악당 안드레이 코빈은 꽤 괜찮았다.) 그 때문인지 흥미진진하게 플레이하고도 '좀 더...'라는 마음이 생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바로 친숙함이다. 물론 7년째 진행된 시리즈여서 샘과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자리잡혀졌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본작의 간소함이 가장 큰 것 같다. 전반적으로 인물들의 드라마가 굉장히 농후해졌다. 샘과 그림/빅터/사라의 관계, 샘의 과거, 엔딩 등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친숙한 느낌을 준다. 심지어 진행하다 보면 샘의 약한/다정한/무너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마 샘이 누군가를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은 시리즈 헤비 유저들도 처음 봤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는 시즌 3이 예고된 미드 시즌 2를 보는 것 같다. 전에 있었던 드라마가 계속 이어지고, 후속작을 이어가는 떡밥이 은근히 깔리면서 끝나는 느낌이 그렇다. 만약 이 게임부터 잡으려면 위키에서 기본적인 설정을 읽고 시작하는게 좋을 것이다.

스테이지 디자인도 약간 동어반복적이다. 구성/배치는 괜찮다. 다만 자극적인 무언가가 2% 부족하다. 이지로 플레이했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소나 고글과 그것을 쓰는 적들은 좀 더 앞당겨 출현시켰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막판에 새로운 도전이 없이 평탄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쉬웠다. 기관총을 쏘는 적 (조금 귀찮긴 했지만) 비슷한 장애물이 하나 둘 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불평을 했지만 UBI소프트는 기본적으로 퀄리티 관리를 꽤 잘해서 심각하게 구리거나 그렇진 않다. 오히려 상당한 수준의 재미를 선사한다. 이 정도로도 성공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페르시아의 왕자: 잊혀진 모래]가 그렇듯, 변화를 위한 쇼케이스라는 느낌이 강하다.

덤으로 난 그 DSfjsklfjasdfiopdi&@*(#&@opbd한 유플레이가 싫다.

P.S.1 트위터에도 적었지만, 톰 클랜시 게임 중에 스플린터 셀 시리즈가 최고의 시나리오로 꼽히는 이유는 샘 피셔라는 캐릭터가 무척 강렬하기 때문일것이다. 솔직히 레인보우 식스나 고스트 리콘, 엔드 워를 하면서 캐릭터에게 감정 이입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스토리 위주 잠입액션이라는 게임 구조 자체가 영화적인 서사 구조가 용이한 구조라는 것도 한 몫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