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잡담

[The Good, The Bad & The Queen] / [Idealism]

giantroot2010. 5. 8. 21:52

The Good, The Bad & The Queen - [The Good, The Bad & The Queen] (2007, EMI)


-간단히 말해서 고릴라즈에서 쳤던 데이먼 알반의 장난을 좀 더 진지하게, 복고적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80년대 중세풍 어쿠스틱 고릴라즈...라면 말이 되려나요. 적고보니 말이 안 되는군요. 고릴라즈 2집 프로듀서인 데인저 마우스가 여전히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합니다.

-물론 고릴라즈하고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급이 다릅니다. 클래쉬-폴 시모논, 아메리카'80 (펠라 쿠티의 밴드)-토니 앨런, 버브-사이먼 통, 블러-데이먼 알반... 이건 뭐 슈퍼뮤지션대전 알파 플러스죠. 한마디로 The Good, the Bad & the Queen는 슈퍼 밴드입니다. 음악도 엄격하게 통제하기 보다 느긋하게 멤버들의 실력과 재능에 맡겨둔다는 인상이 강하고요. 그 중 'Herculean'은 천의무봉에 이른 대가들이 펼쳐내는 멋진 순간이라 할 만합니다.

-데인저 마우스의 프로듀싱은 고릴라즈 2집하고 비슷합니다만, 좀 더 차분합니다. 어쿠스틱과 빈티지 일렉트로닉 사이에서 날아다니면서 화학적 결합을 유도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흥청망청 놀아대던 장난기는 없어보입니다.

-라이벌이였던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가 이 음반을 듣고 좋네...라고 말했다면 대략 이 앨범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 가실겁니다. 굉장히 차분하면서도 어른스럽습니다. 이 부분에서 호오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좋게 들었습니다. 아직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지만, 그 나른한 분위기에 펼치는 알반의 능숙한 솜씨가 제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전 더러운 알반 빠 (←) 왠지 숙성시키면 더욱 곰삭은 듯한 느낌을 낼 법한 앨범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앨범이 추구하고자는 방향과 감수성이 이번 고릴라즈 신보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신보 수록곡인 'On Melancholy Hill'이 원래 이 앨범에 수록되려고 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여담인데 토니 앨런은 이 앨범으로 새로운 팬을 얻은 것 같더라고요 :)

Digitalism - [Idealism] (2007, EMI)

-그러고보니 이것도 한 곡에 꽃혀서 산 앨범이군요. 독일 일렉트로닉 듀오의 데뷔작...입니다.

-가만히 보면 영미권을 제외하면 나름 대중 음악이 발달한 축에 속하는 독일의 전자 음악과 프랑스의 전자 음악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독일의 전자 음악이 딱딱 부러지고 직선적인 리듬과 비트에 대한 탐구 (크라프트베르크, 인더스트리얼 계열)로 나아갔다면 프랑스의 전자 음악은 패셔너블한 감수성으로 비트와 리듬을 풀어내거나 (다프트 펑크, 저스티스) 혹은 한 순간의 정념에 집중하는 양상 (에어)을 보였습니다.

-디지털리즘은 그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저 두가지 특성을 블렌딩했는데, 그 결과 무척이나 일직선적인 박력으로 몰아붙이지만, 전혀 딱딱하지 않고 패셔너블한데다 젊음의 정념을 모두 느낄 수 있습니다.

-데뷔 앨범에 엄청난 에너지와 훅을 보여주는 밴드들이 있습니다. 더 후가 그랬고, 리버틴즈, 수퍼그래스, 로스 캄페시노스!가 그렇죠. 디지털리즘도 이 대열에 낄 만합니다. Pogo는 정말로 대단한 싱글입니다.

-다만 완전 연소가 아닌 것 같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훅이 넘치면서도 술술 넘어가는 맛도 좋고, 막판을 장식하는 주피터 연작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전반적으로 2% 부족합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 일직선으로 밀어붙여서 노련미가 떨어진다는게 그 2%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치더라도 꽤 괜찮은 데뷔 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