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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스 [Hrutar / Rams] (2015)

아이슬란드의 가수인 비요크는 2008년 한국 음악 잡지랑 내한 인터뷰를 하던 도중, “아이슬란드에는 신선함이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곳의 풍경은 매우 삭막하고 솔직해요. 상당히 ‘구식’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복잡한 느낌은 없어요. 그래서 아이슬란드에는 아이러니가 별로 없죠.” 라고 말한 바 있다. 1년에 10편 정도의 영화가 나오고, 대부분의 영화계 종사자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아이슬란드 영화계가 간만에 배출한 [램스]는 그런 비요크의 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설정은 단순하다. 40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내던 시골 양치기 형제가 양이 폐사될 위기에 처하자, 서서히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는 얘기다. 그리머 해커나르손의 연출 역시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잔 기교 없는 샷과 구도, 몽타쥬, 가끔 등장하..

사울의 아들 [Saul fia / Son of Saul] (2015)

라즐로 네메스의 [사울의 아들]은 2015년 칸 영화제의 센세이션 중 하나였다. 유대인 홀로코스트 중에서도 회색지대인 시체 처리반 ‘존더코만도’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비극을 재현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했다는 평가와 도덕 판단이 부재한 듯한 시선과 더불어 역사의 비극을 영화 연출의 첨단으로 나가기 위해 착취한것 아니냐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그렇다면 [사울의 아들]은 어떤 식으로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 영화가 현대 영화 중에서 어떤 전통에서 출발했는지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 영화는 역사의 비극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라는 논쟁에 휩싸였다. 무수한 영화들이 나왔지만 이 논쟁의 첨단에 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알랭 레네의 [밤과..

자객 섭은낭 [刺客 聶隱娘 / The Assassin] (2015)

고백하자면, 허우샤오셴의 차기작이 [자객 섭은낭]이 무협 영화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꽤 당황했다. 내겐 허우샤오셴은 꽉 짜여진 한 샷의 미장센과 느린 리듬으로 흐름과 순간을 드러내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움직임’이 주인 무협 영화를 만들다고 했을 때 마이클 베이가 허우샤오셴 영화를 찍는 소식을 듣는 것만큼 당혹스러웠다. [자객 섭은낭]은 무협 영화를 좋아하는 부모님과 함께 본 영화다. 물론 부모님은 허우샤오셴 영화를 잘 몰랐고, 실제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금세 졸기 시작했다. 이 개인적 경험은, [자객 섭은낭]이 취하고 있는 방법론이 일반적인 무협 영화랑 차이가 있다는걸 잘 드러내고 있다. 샷 구도로 보자면 [자객 섭은낭]은 그의 전작들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무협 영화의..

해안가로의 여행 [岸辺の旅 / Journey to the Shore] (2015)

2013/08/26 - [Deeper Into Movie/리뷰] - 절규 [叫 / Retribution] (2006) 죽은 남편이 돌아와 여행을 제안한다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의 기본 뼈대는 판타지 장르에서는 참신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해안가로의 여행]의 도입부는 신비롭다. 장을 보고 팥죽을 만들던 주인공 미즈키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미즈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남편 유스케가 서 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듯이. 하지만 우리는 그 곳엔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안다. 심지어 친절하게 유스케는 자신이 실종되었다는걸 죽었다는 걸 말해준다. 이 장면이 매력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영화에서 이전 프레임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당혹감과 경외감을 느낀..

무뢰한 [The Shameless] (2015)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은 익숙한 구조에서 출발한다. 형사가 범죄자를 잡기 위해 쫓다가 범죄자의 애인과 사랑에 빠진다. 형사, 범죄자, 범죄자 애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그들이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지 같은 [무뢰한]를 이루고 있는 익숙한 구조에 대해 구구절절히 늘어놓는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디테일을 어떻게 부여하고 그 디테일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드러나는가이다. 이 디테일을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무뢰한]은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액션 영화가 될수도 있고, 아니면 매우 무거운 분위기의 멜로물이 될 수도 있다. 그 점에서 오승욱 감독은 [무뢰한]을 통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무뢰한]이 장르를 통해 설정한 인물들의 동기는 이렇다: 주인공인 정재곤에..

디판 [Dheepan] (2015)

2009/11/05 - [Deeper Into Movie/리뷰] - 예언자 [Un Prophete / A Prophet] (2009)2013/05/21 - [Deeper Into Movie/리뷰] - 러스트 앤 본 [De rouille et d'os / Rust and Bone] (2012)2014/02/19 - [Deeper Into Movie/리뷰] -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De battre mon coeur s'est arrêté / The Beat That My Heart Skipped] (2005)스리랑카 내전과 타밀 타이거라는 반군 단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의 도입부에서 어떤 절망감을 읽어내긴 어렵지 않다. 자크 오디아르는 저널리즘적인 설명은 일부러 배제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