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89

유랑극단 [Ο Θίασος / The Travelling Players] (1975)

2006/05/11 - [Deeper Into Movie/리뷰] - 영원과 하루 한 사람이 등장해 [양 치는 처녀 골포]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선언한다. 다음 샷.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역에 도착한다. 카메라는 그들이 역 앞에 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이 전부 멈춰 섰을때 카메라는 그들을 오랫동안 보여준다. 이 프레임이 친숙하다고 생각하다면, 정확하게 봤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이 등장인물들을 연극 무대에 선 배우처럼 다룬다. 그리고 나레이션이 뜬다. 1952년. "고참들이 있었고 젊은 배우가 있는" 이 유랑 극단은 옛날에 들렀던 마을 에이온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앙겔로풀로스는 유랑극단이 건물로 들어가고 난 뒤, 갑자기 유세 방송을 바꿔버린다. 파파고스 (로 위장한 그리스 독재자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

밀드레드 피어스 [Mildred Pierce] (1945)

제임스 M. 케인의 소설을 영화화한 [밀드레드 피어스]의 도입부는 전형적인 미스터리다. 시작하자마자 총을 맞은 남자의 입에서 밀드레드 피어스의 이름이 흘러나온다. 다음에 한 여자가 위태하게 바닷가를 바라보다가 식당으로 간다. 여자의 이름은 밀드레드. 밀드레드는 식당에서 사업 동료이자 관심을 보이는 남자 윌리를 데리고 나간다. 달콤한 환상에 빠진 남자가 목격한건 사라진 밀드레드와 살인 현장. 한편 집에 돌아온 밀드레드는 두번째 남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불러가게 된다. 그러나 경찰은 범인을 전 남편인 알버트 피어스로 단정지은 상태. 대체 알버트랑 이혼한 이유가 뭔지 물어보는 경찰들에게 밀드레드는 과거를 얘기하게 된다. [밀드레드 피어스]는 한마디로 여성 수난사라 할 수 있는 내용이다. 밀드레..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 / 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1972)

2017/04/02 - [Deeper Into Movie/리뷰] - 절멸의 천사 [El ángel exterminador / The Exterminating Angel] (1962)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은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차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차에서 사람들이 내린다. 옷차림과 멋진 저택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제목이 지칭하는 부르주아라는걸 알게 된다. 부르주아들은 저택의 주인 부부 앨리스와 앙리 세네샬이랑 같이 밥을 먹으러 왔다. 하지만 앙리는 일하느라 바쁘고 결국 앨리스가 그들과 함께 만찬을 하기로 한다. 여기까지가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라면, 그 뒤부터는 조금 이상해진다. 앨리스와 부르주아들은 고오급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식당의 ..

말 없는 사나이 [The Quiet Man] (1952)

2014/09/21 - [Deeper Into Movie/리뷰] -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 2014/11/24 - [Deeper Into Movie/리뷰] -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 꿈결같다. 존 포드의 [말 없는 사나이]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절로 터져나올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현란한 초원의 초록색과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 푸른 하늘, 돌담... 어떤 평론가는 영화 속 이니스프리를 굶주리고 추운 여행 끝에 도달한 낙원이라고 말했는데, 테크니컬러에 담긴 풍경을 보노라면 그런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여기엔 어떤 한치의 황량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존 포드는 그 황홀한 전원에 도착한 사나..

태양 없이 [Sans Soleil / Sunless] (1982)

크리스 마르케의 유명한 단편 [방파제]의 기본 전제는 시간과 이미지, 기억의 관계였다. 마르케는 어린 시절 우연히 잊지 못한 이미지 하나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남자를 보여주면서, 기억을 찾는 행위 자체가 이미지를 거쳐 시간을 횡단하는 행위라 말했다. 그리고 마르케는 영화를 이루고 있는 사진 이미지와 기억, 시간을 한데 모아 몽타주로 이뤄진 꿈을 꿨다. 설정이 자세한 영화는 아니였지만, 이 우울한 단편 영화가 지금까지도 SF계에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기억과 시간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얽혀들어가는지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 꿈 속에서 마르케는 정지한 사진들 속 살아있는 여인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살아있음의 놀라움을 끌어냈다. 마르케의 실험 다큐멘터리 [태양 없이]는 [방파제]에서 뻗어..

[잃어버린 도시 Z] 예고편

현존하는 미국 감독 중에서도 단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제임스 그레이의 신작...인데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잡힙니다. 심지어 원작을 읽었는데도 말이죠. 드디어 뉴욕을 떠난 감독이 향한 곳이 머나먼 아마존이라... 차기작은 아예 우주던데 말이죠.뭐 그래도 감독이니깐 기본 이상은 해줄거라고 믿고 특유의 황갈색 톤의 필름룩은 여전해서 마음에 듭니다. 개봉 시즌이 묘하게 추석 시전과 겹치는 것 같긴 한데 흥행은 기대 안하고 (...) 후딱 봐야 되겠습니다.

투 러버스 앤 베어 [Two Lovers and a Bear] (2016)

킴 누옌의 [투 러버스 앤 베어]의 도입부는 광활한 설원이다. 두 남녀가 제트스키를 타면서 나아가는 장면에서 설원이 가져다 주는 원초적인 쾌감이 느껴진다. 그 다음 쇼트에서 그들은 얼음을 뚫어 낚시를 한다. 아 이 도입부는, [투 러버스 앤 베어]의 감수성이 얼음에 기반해 있으며 내용과 구조가 어떻게 흘러갈지 암시하고 있다. '부모의 구속력은 지대하다'는 대사는 그들이 부모와 관련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는 걸 보여주며, 단단한 얼음을 뚫는 행위는 영화 내내 이어질 두 사람의 사투를 예감케 한다.그걸 증명하듯이 [투 러버스 앤 베어]는 차가운 영화적 공기 속에서 끊임없는 하강 곡선을 그리는 영화다. 킴 누옌은 벡터의 충돌을 통해 전제를 세운다. 주인공 로만은 남쪽에서 북쪽 알래스카로 도주해왔다. 로만에게..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 [The Life And Death Of Colonel Blimp] (1943)

2016/07/10 - [Deeper Into Movie/리뷰] - 호프만 이야기 [The Tales of Hoffmann] (1951) 얼마 전 마이크 파웰과 에머릭 프레스버거의 회고전에서 만난 영화들은, 그간 이 감독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호프만 이야기]를 보고 리뷰를 쓰면서 막연히 지적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파웰과 프레스버거의 영화들은 고전기 영화들의 간결한 우아함과 더불어 영화라는 매체의 즉물성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은 그 즉물성의 허망함을 역사 인식과 철학의 경지로 이끌어올린 걸작이다. 이 영화의 도입부는 매혹적인 미스터리로 구성되어 있다. 파웰과 프레스버거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미룬채 조각난 샷들을 이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