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ere/생각

High Fidelity, Low Fidelity

giantroot2008. 11. 24.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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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망념의 잠드]

내가 음악을 듣고 음악 기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때, 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어떤 전설적인 A/V 매니아가 있었다. 그는 온갖 돈을 투자해서 탄노이 스피커나 맥킨토시 앰프 같은 비싼 A/V 기기들을 사서 듣고, 스피커 선을 바꿔 끼우는 등 소리 질에 대한 강박적인 A/V 라이프를 살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모든 기기를 팔았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아주 비싼 기기를 살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산 것은

평범한 휴대용 라디오와 헤드폰이였다." (약간 각색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 이야기는 어린 나에게 상당히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 생각해볼때, 아버지가 나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음질 같은 외양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그 속에 담긴 음악의 혼을 들으라는 것이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많은 음악을 들었지만, 가장 좋았던 음악은 누구 말마따나 명인의 치열한 연주를 담은 음악이였다. 그 음악은 정말로 정직했고, 내용에 충실했다. 종종 껍질이 화려한 것도 있었으나, 어떤 것은 겉치장이 없거나 후진 겉치장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렇다. 다들 껍질에 신경쓴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껍질 안에 있는 그 속내용이다. 껍질도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다들 저 A/V 매니아가 처음에 한 것 처럼 껍질이 얼마나 아름답냐,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가... 등에 대해 정신을 팔려 그 속에 담긴 내용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난 뭐를 하든 껍질과 내용을 충실하게 하고 싶다. 만약 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먼저 내용부터 하겠다. 그 길은 어렵고 난 아직 부족하다. 아마 평생 부족할 것이다. 그래도 해야지.
 
(어제 채팅하다가 문득 생각나서 뻘 포스팅.)

PS.그렇다고 원본을 험하게 보관하거나 후진 음질이나 열악한 비디오 같이 내용마저 알아볼수 없게 망치는 것을 용인하자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