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 Test/리뷰

더 라스트 가디언 [人喰いの大鷲トリコ / The Last Guardian] (2016)

giantroot2017. 11. 29. 01:36

(누설이 있습니다.)

우에다 후미토는 걸작 [완다와 거상]을 내놓은 뒤, 10년 이상을 침묵해왔다. 그의 신작 [더 라스트 가디언]은 원래 PS3로 나올 게임이었으나, 계속 미뤄졌다. 심지어 PS4 런칭작으로도 선정되지 않았을 정도니깐. 우에다 후미토 본인은 이미 개발을 다 해뒀다고 말했지만, 게이머들에게 [더 라스트 가디언]은 불로초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다행히 2015년부터 발매 계획이 잡히기 시작하더니, 2016년 본격적으로 공개되었고 그해 연말 게임이 나왔다.

우선 우에다 후미토 팬들이라면 이 게임이 [이코]와 [완다와 거상]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답은 [이코]다. [완다와 거상]은 극도로 단순화된 오픈 월드에 플레이어를 던져놓고 보스를 차례대로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퍼즐화하는 신선한 시도를 취했다면, [더 라스트 가디언]은 [이코]처럼 고립된 신비로운 무대를 배경으로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스테이지와 퍼즐을 풀어가는, 전통적인 퍼즐 어드벤처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주인공을 잡아 이끄는 그림자 괴물에 이은 적 골렘 병사도 건재하다. 우에다 후미토가 장르를 창조하는 게 아닌, 장르를 재발명하는 타입의 게임 개발자이긴 해도 [더 라스트 가디언]은 명백히 [이코]의 정신적 후속작에 가깝다.

하지만 [더 라스트 가디언]은 [이코]의 자기복제하는 게임은 아니다. 두 게임은 '동반자'라는 요소를 공유하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코]의 요르다는 신비한 동반자라는 개념을 내세웠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인공과 같은 위치에서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요르다는 RPG 게임의 NPC 동료를 재해석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라스트 가디언]의 동반자 식인 독수리 토리코는 다르다. 그러니깐 정말로 보기 힘든 타입의 상호작용을 하는 동반자다.

우선 이 토리코는 엄청나게 '크다'. 실제로 토리코를 보게 되면 그 크기에 흠칫 놀라게 될 것이다. 프레임에 꽉 들어찬 토리코는 그 자체로도 스펙타클이다. 우에다 후미토는 전작에서 거상을 만들듯이 토리코라는 생물을 만들어간다. 플레이어는 토리코를 풀어준 이후, 토리코를 데리고 다니며 유도해야 한다. 토리코를 타고 올라 발판으로 삼거나 날아서 이동하며, 퍼즐 도구로 쓰이거나 그림자에게 공격받는 플레이어를 대신 지켜준다. 어떤 부분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동물과 같이 행동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고질라나 킹콩처럼 행동하는 이 생물은 정말 특이한 감흥을 안겨준다. 개새라는 말은 적어도 제대로 짚은 셈이다. 토리코는 창작물 통틀어 독특하게 만들어진 괴수다.

우에다 후미토와 소니 재팬 스튜디오가 이 게임에 오랫동안 매달렸던 이유도, 이 토리코라는 생명체를 게임에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직관적인 게임은 아니다. 우에다는 각 상호 작용 포인트를 소비에트 몽타주 이론가들이 숏을 이어붙이는 것처럼 '법칙은 있되 설명은 없이' 배치한다. 그리고 조작을 최대한 단순화한 뒤, 인물들의 반응에서 그 상호 작용 포인트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도록 유도했다. 때문에 우에다 후미토 게임을 플레이를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스테이지에 배치된 상호 작용 지점을 학습하고 상상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우에다 후미토가 이전에서 선보였던 게임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캐릭터 그 자체로 레벨 디자인이 되는 [더 라스트 가디언]에서 플레이어가 상상해야 하는 부분은 더욱 정교해졌다. 요르다랑 달리 토리코는 그 크기 때문에 이동할 수 없는 구간이 있고, 반대로 토리코 혼자서 이동 가능한 구간이 있다. 토리코의 속성에 맞춰 고안된 퍼즐들라던가 실상 지극히 단순한 조작 체계도 한 몫한다. 플레이어는 이런 다양한 지점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토리코를 조종해야 한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동료 NPC를 위해 배치된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를 움직이는 레벨 디자인와 결합하는 실험을 하는 게임이다. 

와중에 [더 라스트 가디언]은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에다 후미토는 개별 스테이지마다 토리코와 소년을 떼어놓으려고 애를 쓴다. 좋은 호러 게임이 그렇듯이 [더 라스트 가디언]은 위협으로 스스로 들어가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하고,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을 생각토록 하게 한다. [이코]에서 고안했던 서스펜스 설계를 답습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몇몇 지점에서 우에다 후미토는 무성 영화만이 가능한 순수한 서스펜스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음향과 조명, 캐릭터의 동선과 액션을 배치하는 것으로 우에다 후미토는 비디오 게임의 액션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질문한다.

변함없이 좋은 부분도 있다. 우에다 후미토는 1급 비주얼 아티스트도 꿀리지 않을 자기만의 세계관과 미적 일관성이 있으며, [더 라스트 가디언]에서도 여전하다. 그는 여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아는 시각 예술가다. 첫 풀 HD 게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에다 후미토는 그 드넓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늘렸다가 줄인다. 탑 밖을 빠져나와 거대한 절벽과 텅 빈 허공으로 둘러싼 성을 토리코와 함께 보고 있으면 그 원초적인 풍경에 눈물이 더럭 날 정도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장대한 프레임을 살릴줄 아는 몇 안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서사는 어떠한가? 후미토 특유의 쓸쓸한 느낌의 전개부터 설명 없이 상상하게끔 만드는 부분은 여전하다. 사실 [이코]랑 크게 다를 게 없는 [더 라스트 가디언]의 서사를 독특하게 만드는 부분도 괴수 장르에서 비롯된다. 우에다 후미토는 로딩 화면에 단서를 던져두었다. 16세기 박물학 서적에서 가져온 이 가상의 생물 일러스트들은, 과학이 막 움트던 시절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모습을 띄고 있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자연의 법칙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세계가 어떤 공포과 미신을 만들어냈는지, 회상을 통해 보여준다. 이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공포보다는 체념이 가깝다.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원망과 체념. 

사실 이 체념은 우에다 후미토 전작을 장악하고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는 고립된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부조리한 세계의 법칙을 개인이 파괴하는 이야기에 계속 끌린다.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그 법칙 때문에 고통받으며, 소년들은 그 법칙을 파괴하는 모험을 떠난다. 제물로 바쳐진 이코는 같이 나가기 위해서 기어이 요르다의 어머니인 여왕를 죽여야 했고, 완다는 위험과 파국을 무릎쓰고 부조리하게 죽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기어이 악마를 부활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두 작품과 달리 [더 라스트 가디언]은 더 나아간다. 파괴 이후 마무리짓는 두 작품과 달리, [더 라스트 가디언]은 내부의 법칙을 파괴한 그 이후의 삶을 짧게지만 다루고 있다.

이미 [더 라스트 가디언]의 결말은 정해졌다. 토리코와 소년의 우정은 지속될 수 없다. 일련의 모험 끝에 악습을 파괴했더라도, 그들은 두 종족 간의 경계선상에서 헤어져야만 한다. [더 라스트 가디언]의 결말이 그토록 처연한 멜로드라마로 다가온다면, 고립된 공간에서 성립한 피해자-가해자의 우정이 세계의 인습과 화해불능이라는걸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에다 후미토는 부조리한 법칙이 만든 피해자와 가해자를 억지로 화해하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국의 카타르시스에 탐닉하지 않지 않는다. 그는 서로의 영역에서 삶을 이어가도록 암시하게 한다. [더 라스트 가디언]이 좀 더 성숙해진 작품이라면, 부조리한 법칙이 만들어낸 한 사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대하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더 라스트 가디언]의 단점은, 우에다 후미토 뇌 속에서 이뤄진 정교하고 복잡한 사변들이 매끄럽게 구체화 되지 못하는 지점에 있다. 그는 토리코의 조작에 시뮬레이션의 흔적을 보이지 않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과감한 생략을 가했다. 그 결과는 비디오 게임스럽지 않은 불편함과 피곤함을 감수해야 한다. 토리코를 불러와 지시하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직관적이지는 않다. 그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 있냐, 없냐에 따라 [더 라스트 가디언]에 대한 평은 갈릴 것이다. 그리고 오랜 개발 기간 동안 누적된 소스 코드의 복잡함으로 쾌적하지 못한 플레이라는 점도 아쉽다. 도중에 버벅거리는 부분이라던가 팝인 같은 부분은 긴 개발 끝에 지쳐서 다듬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어찌보면 타이밍을 놓친 불운한 게임이다. 이 게임이 예정대로 PS3 시절에 나왔다면, 기술적인 문제는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와 별개로 효율적이지 않은 명령 체계 역시 게이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하지만 우에다가 이 게임을 버리지 않고 개새를 깎은 이유도 납득이 되긴 한다. 적어도 [더 라스트 가디언]처럼 과감하게 레벨 디자인과 NPC 동반자, 인간과 비인간 캐릭터 간의 실험을 밀어붙인 게임은 보기 힘들다. [더 라스트 가디언]이 우에다 후미토 최고 걸작으로 꼽히지는 않겠지만,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공치진 않았다는 증거로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