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ht Test/리뷰

언차티드 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 [Uncharted 4: A Thief's End] (2016)

giantroot2016. 6. 16. 02:07

전편의 성공에 빠르게 나왔던 [언차티드 3]와 달리 우리가 [언차티드 4]를 보게 된 건 5년이라는 시간이 걸러셔였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너티독은 [언차티드] 시리즈에서 벗어나 좀비 아포칼립스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게임을 내놓았으며, 이 게임은 많은 상을 휩쓸며 PS3 말기를 장식하는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시대는 PS4로 넘어왔고, 너티독은 [라스트 오브 어스: 리마스터]와 [언차티드: 네이선 드레이크 콜렉션]으로 본격적으로 PS4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 손에는 [언차티드 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가 쥐여져 있다. 우선 간략하게 살펴보자. [언차티드 4]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임이 되었으며, 리마스터링을 제외하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PS4 언차티드 게임이 되었다. 제작진도 대폭 변경되어 지금까지 언차티드 시리즈를 담당해왔던 에이미 헤닉이 아니라 [라스트 오브 어스]의 성공을 이끌었던 닐 드럭먼이 제작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언차티드 4]는 전작들과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인상이 다른 게임이다.

사실 게임 디자인은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언차티드 4]는 너티독 나아가 [언차티드] 시리즈에게 기대할법한 콘솔 "시네마틱" TPS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엄청난 디테일과 물량, 편집증적으로 계산된 자유도 제로의 스크립트 연출로 승부하는 3인칭 슈터 게임 말이다. 그래픽이나 사운드 같은 기술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져 연출이 훨씬 자연스러웠졌다는걸 제외한다면 [언차티드 4]는 전작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언차티드 4]는 [언차티드 3]가 다소 급하게 내놓은 아이디어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갈고리 밧줄과 거기서 파생된 아크로바틱한 파쿠르 액션, 잠입 요소를 추가했다. 갈고리 밧줄 자체는 속도감이 살아있는 훌륭한 선택이였지만, 잠입은 [라스트 오브 어스]보다도 더욱 양념에 가까운지라 인상은 약한 편이다. 또한 증거물 살펴보기와 수집 요소가 대폭 비중이 늘었지만 이 역시 부차적인 수준이다.

여기서 질문. 여러분들은 [언차티드] 시리즈에게서 기대하는게 무엇인가? 아마도 땡땡의 모험에서 시작해 [리오에서 온 사나이]를 거쳐 [레이더스]로 이어지는 보물 사냥 영화들에게서 기대할법한 가볍고 날렵한 활극을 기반으로 무지막지한 디테일과 스케일로 무장한 블록버스트 TPS일 것이다. 심지어 [언차티드]는 보물 사냥하는 TPS를 시도한 최초의 게임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언차티드] 시리즈는 [툼 레이더] 시리즈의 벤치마킹에서 시작한 게임이다

그렇다면 [언차티드]가 [툼레이더] 벤치마킹에 그치지 않고 인기 게임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언차티드 시리즈의 방향을 쥐고 있던 에이미 헤닉은 세 편의 언차티드 게임을 통해 활극의 문법을 완벽하게 꿰고 있었다. 에이미 헤닉은 [언차티드] 시리즈를 통해 뱀파이어로 대표되는 오컬트 고딕 판타지와 타락과 분노, 복수라는 어두운 감정들에 천착했던 [레거시 오브 케인]의 작가라 생각할수 없을 정도로 활극적 재미에 치중해왔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황당한 오컬트 반전 요소, 능글맞은 유머와 대담한 생략이 돋보이면서도 동시에 세심하게 조율된 캐릭터 메이킹, 선악의 구분이 명백하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던 착취적으로 다뤄진 살육과 타 문화 묘사... 이 모든 것들은 때마침 열린 PS3의 하드웨어 혁명과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하지만 [언차티드 4]는 그런 불경스러울 정도로 뻔뻔하고 말초적인 재미가 많이 줄어든 편이다. 4를 시작하자마자 [언차티드] 시리즈가 제공하던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플레이어들은 초반부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언차티드 4]의 도입부는 전작들과 달리 분량이 상당한데다 은근히 꼬여있는 편이다. 그리고 컷신 연출 역시 상황 설명이 아니라, 인물 간의 미묘한 공기라던가 복선, 성격 설명 같은 부분에 치중해있다. 엘레나와 네이트가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봐라. 여기서 닐 드럭만은 '일상의 권태와 모험의 매료'라는 주제를 기조로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선을 잡아내려고 애쓴다.

단순히 연출 뿐만이 아니라 [언차티드 4]가 내세우는 서사의 모든 방향은 '일상의 권태'와 '비일상의 어두운 이면'이라는 주제 위에 세워져 있다. 이야기의 중핵을 이루는 형 새뮤얼 드레이크와 에이버리의 보물이 그렇다. 그들은 일상에 반대쪽에 서서 네이트를 유혹하고 끝내 유혹하는데 성공하지만 정작 그 유혹은 신기루 위에 세워져 있는 존재라는게 드러난다. 

문제는 이게 너무 '닐 드럭만'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드럭만은 [언차티드 4]에서 전작들이 가지고 있던 허풍스럽지만 예스러웠던 화술의 매력을 모조리 제거해버린다. 대신 드럭만은 [언차티드 4]를 인간들의 욕망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최대한 "리얼리스틱"하게 전개했던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만든다. 오컬트는 등장하지 않으며, 레이프와 에이버리 해적단의 파멸은 욕망과 오만의 산물로 묘사되고, 갈등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배태된다. 보물에 신경쓰지 않고 하드보일드한 태도를 견지하며 빠져나가는 나딘은 그 점에서 [언차티드 4]의 방향 전환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전작의 악당들의 최중요 목표가 보물이였던걸 생각해보라. 이건 매우 중요한 변화다. 심지어 폐허나 유적을 묘사하기 위해 동원된 장치들도 [언차티드]스럽지 않고 [라스트 오브 어스]스럽다. 이끼와 물, 식물들로 채워진 쇠락한 문명의 흔적은 오파츠적이라기 보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깝다.

이러다보다 캐릭터나 배경 연출들도 꽤나 이질적으로 변했다.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수다스러워졌다고 할까. [언차티드 4]의 등장인물들은 게임 내에서도 [라스트 오브 어스]식으로 쉴새없이 잡담하며 네이트는 와중에 유적을 보며 메모를 한다. 이런 부분들은 인물 간의 드라마는 이입할수 있는 정도로만 남겨두고 액션에만 치중했던 전작들과 대조되는데, 썩 좋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서사가 지나치게 비대해져 게임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할까. [언차티드 4]는 이전까지 생략되어왔던 감정 묘사를 위해 [라스트 오브 어스]식으로 많은 대사를 게임 플레이 도중에 집어넣는데 이게 꽤나 산만하다.

새로이 추가된 네이트의 과거도 꽤나 사족스럽다. 네이트가 매력적이였던 이유는, 온전히 밝혀지지 않고 조금씩 드러나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미스터리함이 캐릭터의 노련함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편의 도입부를 보라. 시작부터 네이트는 이미 능숙한 모험가였고 그 이상의 정보는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엘레나를 통해 그를 소개받은 뒤, 네이트를 따라 모험을 하면서 그의 능글맞은 캐릭터에 흠뻑 젖어들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언차티드 3]와 기타 미디어 믹스 전개를 통해 이미 알만큼 알았다. 한마디로 이번편의 네이트의 과거는 순전히 이야기 전개를 위해 급조된 느낌이다.   

드럭만이 개입해 추가한 부분들이 내적인 논리를 갖추고 있다는건 인정한다. 어차피 이야기가 완벽하게 막을 내려야 한다면 급조스러운 설정 추가는 필요했을 것이다. [언차티드 3]에서 네이트는 겨우 얻은 안정감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상처받은 소년에서 과거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어른으로 정신적으로 성숙을 마친 상태였고 네이트와 엘레나의 결혼은 그런 성장의 증거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새로이 이야기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거면 굳이 [언차티드 4]를 만들지 않고 [언차티드 3]의 결말을 그대로 놔두는게 낫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말에 이르면 더 그렇다. 네이트와 주변 사람들이 비일상을 떠나 평범한 삶을 살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시리즈를 따라온 팬으로써 보기 좋지만, 순전히 결말을 내기 위한 결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납득은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있었을까? [언차티드] 시리즈가 대단한 메세지를 전파하는게 아닌, 활극의 재미에 치중했던 시리즈라는걸 생각해보면 그렇다.

무엇보다 [라스트 오브 어스]와 [언차티드 4]에 이르러서 너티독이 내놓는 고도의 스크립트 연출에 기댄 시네마틱 TPS라는 디자인 전략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걸 지적해야 되겠다. 답보 상태에 머문 게임 디자인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어떤 근사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평자들과 게이머들을 여럿 홀렸다는 점에서 너티독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에 대한 오독된 칭찬들을 떠올리게 한다. 즉슨, 너티독은 큐브릭이나 레픈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수백개의 시선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게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건 창작자에겐 매우 좋지 않은 버릇이다.

[언차티드 4]는 분명 [언차티드 3]이 급하게 내놓은 비전을 좀 더 차근히 다듬고 너티독의 물오른 기술력을 한껏 맛 볼수 있는 "잘 만든" AAA 게임이긴 하다. 하지만 잘 만든 게임인것과, 그들의 비전에 동의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언차티드 4]는 전 멤버가 만든 명곡을 노련하지만 자기 멋대로 편곡해 연주하고, 이에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그건 그렇고 우리가 앞으로 새로 내놓을 앨범이 개쩌니깐 기대해도 좋아."라고 멘트하는, 매너리즘에 젖은 록 밴드 리더를 보는듯한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