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くるり - [図鑑] (2000)

giantroot2016. 5. 28. 01:45

 

쿠루리의 데뷔작 [さよならストレンジャー]은 약간 울적하면서도 솔직한 에너지로 가득찬 로큰롤 앨범이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앨범의 프로듀서인 사쿠마 마사히데는 요닌바야시라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출신 뮤지션이다. 프로듀서를 제외하더라도 [さよならストレンジャー]에 실린 'ブルース'나 'ハワイ・サーティーン'은 로큰롤적 상궤에서 많이 벗어난 작곡 패턴을 보면 쿠루리는 좀 더 큰 야심이 있었던게 분명하다. 2집 [図鑑]은 그런 야심이 본격화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2집 [図鑑]의 도입곡인 'イントロ'는 그 점에서 의도가 명백하다. 1집에 실린 '虹'을 인용하다가 볼륨을 확 죽여버린다. 그리고 불길하고 쓸쓸한 무드를 강조하는 오케스트라와 멜로트론 간주로 이어진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선전포고로, 그들은 1집을 잊고 2집의 복잡하고 섬세하게 구축된 소리들을 주목해달라고 하고 있다. 

정작 이어지는 'マーチ'은 귀청을 날려버릴 강력한 로큰롤이다. 드럼 연타 뒤 기묘하게 틀어진 왜미 기타와 묵직한 베이스의 공습이 이어진 뒤 키시다의 보컬이 등장해 '이런 기분은 첫 봄바람은 타고 사라져버렸으면 좋을건데'라고 외친다. 그 와중에 연주는 멈칫거리다가도 짓밟듯이 솟아오르는 예측불허의 연주를 선보이며 청차를 폭풍 속으로 데려간다. 이런 강력한 로큰롤 기조는 다음 트랙인 '青い空'에서도 이어진다. 헤비메탈을 연상케하는 묵직한 트윈 기타의 공습과 "중화적"이라고 자평하기도 한 아웃트로는 로큰롤에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図鑑]의 로큰롤이 [さよならストレンジャー]에 담긴 로큰롤과 같은 것일까? 이런 의문에 쿠루리는 'ミレニアム'과 '惑星づくり'를 내놓는다. 먼저 'ミレニアム'는 이펙터로 변형된 첼로 도입부가 끝난 뒤, 베이스가 리드하면서 마림바 소리와 어쿠스틱 기타의 쟁글거림이 혼재되어 있는 포크 록이다. 그러나 중간중간 불협화음과 같은 기타 재밍과 다양한 소리들이 배합되면서 일반적인 포크 록이라 보기 힘든 오묘한 질감을 보여준다. 이펙트와 다양한 악기들을 통해 인공적으로 재구성한 포크 록이라고 할까. '惑星づくり'와 'ABLUA' 에 이르면 재밍과 전자음으로 채워진 짧은 포스트 록 연주곡이다.

슬슬 헷갈릴수 밖에 없다. [図鑑]에 실려있는 로큰롤은 전작과 달리 단순한 로큰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로큰롤을 차갑고 정밀한 프로듀싱으로 조심스럽지만 난폭하게 재구성해 청자의 귀청에 내리꽃는다. 날카롭게 내질러대는 기타 연주와 리듬 세션은 뜯어보면 XTC의 그것처럼 스케일과 훅이 묘하게 비틀어져 있으며 (사실상 이 앨범의 기초가 된 1집의 'オールドタイマー'과 이 앨범 수록곡들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재밍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이펙터와 전자음들, 마림바와 첼로 같은 다양한 악기들부터 아방가르드적인 허밍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암약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창출한다. 전작과 달리 소리의 벽이 꽤나 견고하게 쌓여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독특한 프로듀싱은 후반부로 갈 수록 빛나는 흐느적흐느적거리지만 단단한 훅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걸작 '街', 슬라이드 기타와 기괴한 허밍을 동원한, [図鑑]식 로큰롤의 정점인 'ロシアのルーレット', 슈퍼카의 나카무라 코지가 리믹스를 담당하고, 주술적 코러스가 기괴하면서도 처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대작 'ガロン (ガロ〜ンmix)'가 그렇다.

이쯤되면 프로듀서를 확인해볼수 밖에 없을 것이다. 쿠루리가 [図鑑]을 위해 데려온 프로듀서는 바로 짐 오루크였다. 당시 짐 오루크의 음악적 세계는 아방가르드와 현대 음악에 기반한 로큰롤과 팝의 재해석이라 정리할 수 있었다. 주디 씰과 반 다이크 파크스, 버트 바카락, 바시티 버넌에 대한 열광, 기타 한 대로 미니멀한 포크 연주를 한없이 이어가거나, 다양한 악기들을 전자 이펙트를 이용한 겹겹이 쌓아올린 소리 층위가 이 시절 오루크의 특징이었다.하지만 팝과 포크를 연주하면서도 종종 '별거 아니다'라며 먹물적 아이러니를 보이며 자의식을 드러냈던 오루크의 솔로작들과 달리, [図鑑]은 그런 먹물적 아이러니를 찾아볼 수 없다. 아무런 악기 없이 피아노 한 대로 쓸쓸하게 읇조리는 발라드 'ピアノガール'라던가 1집 시절로 돌아간듯한 '屏風浦' 같은 곡은 아이러니는 커녕 촌스러울 정도로 순수하기 그지없어 당황스러울 정도다.

분명한 것은 [図鑑]의 정서는 의외로 [さよならストレンジャー]에서 보였던 울적鬱的인 에너지에서 멀지 않다는 점이다. 가사를 들쳐보면 이런 점은 명확해진다. 모호한 문장과 상황들이 이어지지만 [図鑑]의 정서는 "새카만, 차가운 바다"로 요약할 수 있다. 화자는 "차가운 기운은 없지만 모래 폭풍만 휘몰아치는 공원"을 휘적이며 "해가 오래 떠있음을 기뻐"하지만, "지킬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좌절한다. 화자가 사랑했던 사람이 사라진 거리에서 "이 거리는 나의 것"이니 "잠들지 말아줘" "뛰어나와줘 웃어줘 열쇠를 없애줘"라고 외치지만, "머물 곳 없이" "기온은 점점 오르고 죽음의 수평선은 꽃밭에" 가는 걸 보고 좌절한다. 심지어 행복감을 느낄때조차 화자는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을 묻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냉소적으로 "사랑뿐이야, 비웃으면 죽어버릴꺼야"라고 뇌까리며 "일어서서 모든 것을 부숴버리려고" 한다. 결국 그들은 9분 31초동안 망망대해를 떠돌며 말라붙은 목소리로 "어디서 불타버렸나, 어디서 끊겼나"며 울먹인다.

무엇이 이렇게 싸늘하면서도 울적인 기운으로 채우게 했을까? 키시다 시게루는 이 앨범을 만들 당시 멤버들 간의 불화가 매우 심했다고 밝힌바 있다. 불화와 더불어 쿠루리의 지금 위상과 무색스럽게 이 앨범의 선행 싱글들은 그렇게 판매량이 좋은 편도 아니였다. 이런 팍팍한 밴드의 상황과, 낯선 도쿄에서의 삶은 여전히 힘들고 때마침 밝아오는 밀레니엄도 세기말과 그렇게 달라진 것 없다는 청춘의 냉소적인 감각이 이런 곡들을 배태한 것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무언가 막힌듯한 지금의 자신에 대해 만족할수 없었고, 그렇기에 자신들이 지금까지 하고 있던 "로큰롤"에 대해서도 다르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짐 오루크를 부른 것도 그가 '록과 팝의 아이러니'를 잘 알고 있는 뮤지션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図鑑]은 짐 오루크의 아이러니로 무장한 젠체하는 태도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감수성을 획득한 앨범이 되었다. 그들은 로큰롤 이외의 어법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도,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촌스러울 정도로 쏟아부었고 그 결과 [図鑑]은 시카고 시티 보이 오루크의 젠체하는 프로듀싱과 "교토 촌놈" 쿠루리의 촌스러운 로큰롤이 팽팽히 대결하는 흥미로운 앨범이 되었다. 물론 형식적으로 보자면 [TEAM ROCK]과 [The World is Mine]이 훨씬 정교한 편이지만, [図鑑]은 한 시기에만 뱉어낼 수 있는 날 것의 에너지를 매우 정교한 양식으로 포착했다는 점에서 매우 진귀하다. 심지어 그들조차 [アンテナ]로 다시 한번 로큰롤로 돌아갔지만 이 앨범의 유니크함을 포착하진 못했다. 하여튼 대단하다. 쿠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