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Fly/비문학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

giantroot2015. 5. 31. 02:03



서사(서사)ㆍ기억ㆍ비평의 자리

저자
발터 벤야민 지음
출판사
| 2012-12-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발터 벤야민 선집 제9권 서사(서사)ㆍ기억ㆍ비평의 자리이 선집 ...
가격비교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꾼]은 니콜라이 레스코프라는 한 이야기꾼을 고찰하고 있는 에세이이다. 먼저 벤야민은 현 시점에서 이야기꾼이라는 존재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야기꾼을 ‘어떤 거리와 시각을 취하게끔 한다’라고 하면서 그것을 ‘경험을 나눌 줄 아는 능력’하고 연계시킨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꾼이 드물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이유로는 경험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꾼의 이야기의 원천은 무엇인가? 벤야민은 그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는 ‘경험’에서 찾는다. 그러면서 이야기꾼을 두 종류로 분류를 하는데 이는 농부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뱃사람으로 나뉜다. 한 곳에 정착한 자의 이야기와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자의 이야기가 이야기꾼의 원조가 된 것이다. 물론 이 두 영역은 확실하게 나눠져 있는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와 이야기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벤야민은 레스코프에 대해 “공간적으로 먼 곳의 이야기나 시간적으로 먼 과거의 이야기에 정통해 있었다”라고 말한다. 신자이자 러시아 주재원으로 일했던 레스코프는 러시아 전설들을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확고한 천성을 가진 인물들을 그려내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벤야민은 진정한 이야기꾼은 “드러내거나 숨긴 채로 유용한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으”며 이야기꾼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현대로 올수록 경험의 전달 가능성이 줄어든데다 진리의 서사적 측면인 지혜가 사멸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종말엔 근세 초기에 등장한 소설의 등장과 연관이 있다. 소설이 지금까지 산문문학과 차이가 나는 부분을 바로 구전의 전통과 독립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마디로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경험으로 만든다면, 소설은 철저히 개인적인,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고유한 것”에서 시작해 그것을 극단으로 끌고 간다는 점이 있다.

 이런 서사 형식의 변화에 따라 이야기와 대조되는 새로운 소통의 형식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바로 정보이다. 이제 사람들은 멀리서 온 소식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한 어떤 단서를 제공하는, 즉각 검증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이해 가능한 정보 듣기를 가장 선호하게 되었다. 어떤 교훈으로써 이야기하는 기술이 드물어진 것도 이 정보의 대두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벤야민이 레스코프를 주목하는 이유는 “기이한 일, 놀라운 일이 지극히 정밀하게 이야기되지만 사건의 심리학적 연관이 독자에게 강요되는 일이 없다”는 점에서다. 레스코프를 통해 벤야민은 진정한 이야기가 어떤 것이며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근대 이후로 도래한 ‘정보’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짚어내고 있다. 정보는 새로웠던 순간이 지나면 소진되지만 반대로 이야기는 소진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이야기는 심리학적인 분석과 설명을 하지 않아도 듣는 사람을 하여금 동화되게 하는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계속 전파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완과 동화 과정이 현대 사회에서는 부족했다고 벤야민은 보고 있다.

그 점에서 이야기는 ‘전달의 수공업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순수한 실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보고하는 사람의 삶 속에 일단 사물을 침잠시키고 나중에 다시 그 사물을 그 사람에게서 건져올린다. 즉슨 이야기는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이야기하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벤야민은 여기서 발레리를 인용한다. 발레리에 따르면 현대인은 시간을 줄일 수 없는 일에는 더 이상 손대지 않는다. 현대인의 삶에 따라 이야기도 더욱더 축약되어가는 현상을 보이며 이는 영원성에 대한 생각의 소멸과 연계가 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영원성은 죽음의 모습과 연계되어 있음. 경험의 전달 가능성이 줄어든 것과 연계된다. 19세기 시민사회와 과학의 발달은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게 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과정인데 중요한 것은 죽는다는 것은 각 개인의 삶에서 공적인 과정이자 가장 전범적인 과정이였다. 하지만 현대로 갈수록 점점 요양원이나 병원 같은 지각의 세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임종에 이르러 이야기가 권위와 설득력을 가지게 되는것과 연관이 있는데 이는 헤벨의 뜻밖의 재회에서 드러나는 세월의 힘이 담긴 문장에서 확인할수 있다.

어떤 서사형식이든 그것을 연구하는 작업에는 이 서사 형식이 역사 기술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탐구하는 일이 포함된다. 더 나아가자면 역사 기술이 모든 서사 형식의 창조적 무차별성이 나타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연대기는 그런 역사 기술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서사 형식이다. 역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인 연대기 기록자와 역사가 간에는 차이가 있는데 연대기 기록자는 설명의 의무가 없지만 역사가는 그 연대기 기록을 설명해야 한다. 중세 연대기 기록자들은 해명 불가능의 영역에 자신의 연대기를 기록해 세상사 흐름에 포함시킨다.

이야기꾼 속에는 연대기 기록자가 세속적인 형태로 보존되어 있고 레스코프는 연대기 작가와 이야기꾼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는 작가다. 그렇기에 레스코프의 이야기에서는 세상사의 흐름을 분명하게 구분하는게 불가능하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는 자의 관심은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재현할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기억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서사적 능력이다. 이야기꾼이 서사를 만들어내는데에는 자신의 체험 혹은 다른 곳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승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야기꾼은 기억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 서술이 여러 서사 형식들의 공통의 출발점을 나타낸다면 서사시는 소설과 이야기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사시에서 소설이 독립되었을때 기억과 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게 밝혀졌다.

기억: 사건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주는 전통의 연쇄. 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에서 연결되며 수많은 사건들에 바쳐져 있다. 이런 연쇄는 서사적 기억, 이야기의 뮤즈. 소설의 뮤즈는 회상. 잠깐동안 지속되는 이야기꾼의 기억과 달리 한 명의 주인공과 한 명의 사건을 다룸. 서사시에서 분리된 소설은 곧 기억이라는 유산을 물러받게 되는데, 루카치를 인용하자면 소설에서는 의미와 삶이 분리되고 본질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이 분리된다. 이걸 통찰하면서 도달할수 없는 삶의 의미를 파악하고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인식의 정리와 그 정리를 인식하고 삶의 의미를 주는 것에서 끝을 맺는 형식이야말로 매우 소설적인 것이다.

소설을 읽는 자는 고독하다. 이 고독 속에서 소설의 독자는 소설의 소재를 정복하고 삼켜버린다.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소설속에 기록된 어떤 사건에서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발견할수 있을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원초적이지만 건져낼수 있는 개념은 다양하다. 위대한 이야기꾼들의 공통된 점은 그들이 자신의 경험의 발판들을 자유롭게 이용한다는 점에 있다. 동화는 그런 이야기의 순수한 마력을 잘 보여주는 예로, 인류가 악몽을 떨쳐내기 위한 방도들을 찾아볼 수 있음. 레스코프는 그런 동화의 정신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주력했다. 

그러면서 레스코프는 의인으로 정점을 이루는 삼라만상의 위계를 탐구하는데, 점점 내려갈수록 이 탐구는 신비주의적인 관점에 가까워지면서도 이야기꾼의 천성 자체가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렇기에 벤야민은 이야기꾼이 이야기 소재인 인간의 삶과 맺는 관계는 그 자체가 수공업적인 협동 작업이라고 보며 이를 위해선 자신의 경험이든 타인의 경험이든 그 경험의 원료를 탄탄하고 유용하며 일회적인 방식으로 가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야기꾼을 교사와 현자의 반열에 올려다 놓으며 소설의 시대에서 이야기꾼의 위치를 복권하며 그것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고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