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 콜] 감독 J.C.챈더의 신작 [올 이즈 로스트]는 극도로 [마진 콜]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영화다. 우선 대도시 증권회사였던 무대가 바다로 옮겨졌고 앙상블 극에서 1인극으로 변해 사실상 로버트 레드포드가 혼자서 이끌고 간다. 하루 정도로 집약되었던 시간은 제법 길어졌으며 금융 상품을 놓고 다루던 유식한 대화들은 생존의 투쟁을 향한 개인의 말없는 투쟁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장르 역시 느와르에서 모험물로 바뀌었다. 냉소적으로 보면 자신의 능력을 제작자들에게 확인시켜주는 쇼케이스용 작품이라 폄하할 수도 있을텐데 막상 영화를 보면 [올 이즈 로스트]는 그런 냉소마저 날려버린 작지만 강력한, 고전적인 모험물이다.
자연 앞에 선 한 사람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그래비티]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을 건데, 단적으로 보면 장르적인 구성은 같으나 그것을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먼저 챈더는 언급했다시피 캐릭터와 서사에 대한 설명을 극도로 줄인다. 우리가 이 주인공 남자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육지에 남겨둔,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정도며 당연하게도 주인공을 도와주는 캐릭터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같은 전문가들의 생존 투쟁기를 다루고 있지만 여기서 [그래비티]와 [올 이즈 로스트]는 방향이 달라진다. 구체적인 캐릭터 드라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풍경화의 일부처럼 추상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올 이즈 로스트]의 추상적이고 단순한 필치로 묘사된 생존에 대한 의지는 인간 스스로 감내하고 끌고 나가야 하는 것이 된다. 그 결과 [그래비티]랑 다르게 [올 이즈 로스트]에 등장하는 생존을 향한 투쟁은 철저히 이름 없는 주인공의 혼자만의 것이 된다. 다행히도 이 이름 없는 주인공의 투쟁은 재미있는데, 주인공이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하는지 잘 아는 전문가이며 동시에 그 전문가가 저지를수 있는 실수들도 빼곡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비티]의 삶에 대한 의지는, 인간의 영역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전지적 작가=신적 존재의 격려를 통해 이뤄진다면 [올 이즈 로스트]의 삶에 대한 의지는 그런 격려 없이 온전히 홀로 서고 실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마지막의 좌절 끝에 사람의 형상으로 찾아온다. 즉슨 [그래비티]의 힘겨움이 구체화된 라이언 박사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상처에서 비롯된다면, [올 이즈 로스트]의 힘겨움은 최소한의 드라마만 주어진 이름 없는 남자를 연기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늙고 허약한 얼굴 그 자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어찌보면 [그래비티]보다 훨씬 추상화되어있고 훨씬 연기하기 어려운 타입의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레드포드의 연기는 그렇게 추상화된 드라마도 맛깔난 연기를 뽑아낸다.
그 점에서 [올 이즈 로스트]는 [마진 콜]에서도 언뜻 보였던, 모호하고 추상적인 가치 보다 구체적인 실천에 대한 선호라는 J.C.챈더 특유의 가치관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마진 콜]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증권 상품의 문제점이 방치되면서 실제 세계에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통해 비관적인 전망과 현 세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내놨다면 [올 이즈 로스트]는 생존을 향한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들이 어떻게 실수를 만들고 실제적인 구원에 이르는가를 보여주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방향성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휴머니즘적인 터치가 강해졌다고 할까.
[올 이즈 로스트] 정도만 되면 J.C.챈더는 소포모어 컴플렉스는 일거에 날렸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물론 서사 부분에서 극도로 추상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J.C.챈더는 해양조난물의 법칙을 잘 알고 배치하고 있으며 레드포드는 그에 걸맞는 강한 추진력을 영화에 부여하고 있다. 고전적인 오락물의 감각으로 맵시있게 빚어진 이 영화가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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