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더 헌트 [Jagten / The Hunt] (2012)

giantroot2013. 2. 16. 17:30



더 헌트 (2013)

The Hunt 
9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센, 수세 볼드, 아니카 베데르코프, 라세 포겔스트룀
정보
드라마 | 덴마크 | 115 분 | 2013-01-24


토마스 빈터베르 감독은 덴마크의 도그마 선언과 라스 폰 트리에가 발굴해낸 감독이다. 덴마크 상류층 노인네의 회갑 잔치 뒤에 숨겨진 역겹고 끔찍한 진실과 인간 관계의 폭력성을 조악한 비디오 카메라로 폭로한 [셀레브레이션]은 그를 단숨에 촉망받는 감독으로 올려놨다. 


그러나 그 후 이어진 커리어는 실망스러웠다고 말해도 할말이 없었다. [올 어바웃 러브]는 헐리웃 스타들을 동원해 라스 폰 트리에처럼 과잉된 스타일로 찍은 SF종말(!!) 영화였지만 완벽한 파탄이라는 평을 들었고 미국 서부극을 기묘하게 변주한 [디어 웬디]도 트리에 복제에 불과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대로 묻혀지나 싶더니 트리에 스타일을 포기한 [서브마리노]로  나쁘지 않은 평을 얻어냈고 이에 고무받았는지 단숨에 [더 헌트]를 내놓았다.


이런 이력 때문인지 [더 헌트]에서 빈터베르가 동원하는 연출은 차분하다. 카메라는 자의식을 많이 드러내지 않고 사건과 인물 주위를 맴도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매즈 미켈슨은 007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피곤하고 지친 중년을 덤덤히 보여주고 있다. 그를 받쳐주는 다른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도 훌륭하다.


감독이 말했듯이 [더 헌트]는 북유럽의 평온한 일상이 성적인 학대가 있었다는 폭로로 발칵 뒤집혀진다는 점에서 [셀레브레이션]의 짝패라 할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더 헌트]는 [셀레브레이션]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그 성적인 학대가 있었다는 폭로는 사실 주인공 루카스를 짝사랑하는 클라라의 거짓말-라기 보다 자기 멋대로 확대해석한 어른들의 단언-이다. 


이 때문에 영화의 권력 구조도 뒤집혀진다. [셀레브레이션]의 성학대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그 사실을 숨기고 싶은 권력을 쥔 자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전통적인 수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더 헌트]에서 성학대는 일어나지 않은 허구에 불과하며 폭로자들이 아무것도 하지도 않은 가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기묘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빈터베르는 그 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건의 진상을 확실하게 못박아놓는다.


아마 관객들은 그 어리석은 폭력이 만들어내는 무시무시함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일것이다. 사실 그게 가장 중핵을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헌트]의 폭력은 단순한 폭력 이상으로 어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코드를 함의하고 있다. 


영화 중반부, 루카스는 무혐의로 풀려나지만 여전히 폭력과 멸시는 쏟아진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역고소나 떠남 없이 그 공동체에 머물며 감내한다. 루카스의 이런 행동은 마치 예수의 처형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가 겪는 고난은 하나의 종교적인 수난인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크리스마스 전후라는 점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한데, 이 설정은 루카스가 겪는 수난은 사실 '타자에게 쏟아지는 폭력을 이해할줄 아는 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통과의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침내 예수의 탄생일. 루카스는 교회로 대표되는 공동체의 공적인 자리로 돌아온다. 부활인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믿지 않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테오에게 소란을 일이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 눈을 똑똑히 보라고!' 루카스가 벌인 소란은 테오(와 마을 사람들)를 비난하는게 아니다. 외려 거짓된 믿음을 믿으며 폭력을 행사하는 테오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에 가깝다. 그 복음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타자의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 방황하던 테오는 그 메시지에 어느정도 감화받(는 것처럼 보이고) 그에게 먹을 것을 나눠준다. 이렇게 루카스의 수난극은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헌트]의 무서운 부분은 바로 이 뒤에 이어지는 결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루카스의 아들 마커스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루카스는 평소처럼 사냥에 나서지만 '사냥'이라는 행위에 대해 찝찝함을 느끼고 사슴을 향해 총을 쏘지 못한다. 루카스는 저 소란 이후 깨달은 자가 된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총이 한 발 발사되고 돌아본 루카스는 역광에 비친 사람의 실루엣을 보게 된다. 영화는 이 결말을 통해 작은 거짓말에서 시작한 증오로도 쉽게 흔들리는 인간 사회의 허약함을 보여주면서 '타자를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