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잡담

The Decemberists - The Infanta, Don't Carry It All

giantroot2011. 5. 4. 01:05




요새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디셈버리스트 앨범을 두 장이나 구해서 듣고 있습니다. 하나는 올해 나온 [The King is Dead]이고 또 하나는 2005년에 나온 [Picaresque]입니다.

디셈버리스트는 아마 제가 처음으로 접한 미국발 얼트 포크/컨트리 계열 뮤지션 (버즈를 시발점으로 삼고 R.E.M., 카우보이 정키스에서 시작해 최근의 플릿 폭시즈까지.)일겁니다. 요 라 텡고나 플레이밍 립스로 미국 인디 록의 매력을 알게 된 뒤, 무작정 사들인 음반 중에 이들의 [The Crane Wife]가 있었습니다. 딱히 새로운 방향이 담긴 앨범은 아니였지만 센스있는 우등생의 정석적이면 영리한 해법이라는 느낌의 앨범이였는데,  고풍스러운 잔혹동화적인 감수성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사실 이전까진 컨트리 앨범을 딱히 즐기는 편은 아니였는데, 디셈버리스트를 기점으로 많이 좋아하게 됬기 때문에 여러모로 인상적인 앨범이였습니다.

올해 나온 [The King is Dead]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죠. 이 앨범은 아마 디셈버리스트 최초로 '연극적-프로그레시브' 구성을 버린 앨범일 겁니다. 물론 가사는 여전히 그들답게 문학적인 수사들을 동원하고 있지만, 대곡적인 구성이 싹 사라져버려 굉장히 날렵해졌습니다. 가장 긴 곡이 5분 30초 된다는 점이 그걸 증명하고 있겠죠. 아마 이런 변화는 전작 [The Hazard of Love]가 스토리텔링에 집착했다가 다소 미묘한 반응을 얻은 것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앨범은 제가 가지고 있는 세 장의 디셈버리스트 앨범 중에서 가장 미국적이며, 스트레이트 직구로 승부하는 팝 앨범입니다. 원래 컨트리/포크 록 노선을 딱히 숨기지 않았던 밴드였지만, 이 앨범은 그 노선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는 완전히 줄어들었으며 피들 같은 악기를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부분에선 톰 페티 나아가 버즈와 밥 딜런, 페어포트 컨벤션, R.E.M., 카우보이 정키스 같은 포크 록의 대부들을 연상하게 합니다. (실제로 길리언 웰치와 피터 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굉장히 '대중 친화적'인 앨범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차트 1위를 차지했더라고요. 꾹꾹 에너지를 눌러담으며 떼창을 유도하는 'Don't Carry It All', 'Down By The Water'는 흥겨운 싱글입니다.

만약 전작의 잔혹동화적이면서 연극적인 감수성을 좋아했다면 이 앨범은 꽤 밋밋하게 다가올겁니다. 반대로 그거와 상관없이 이들이 그 감수성에 꼭꼭 숨겨두었던 양질의 얼트 포크/컨트리 록을 좋아했다면 이 앨범은 좋은 앨범으로 다가올겁니다. 전 후자입니다.

이제 [Picaresque]를 이야기해보자면, 이 앨범은 연극적인 구성과 잔혹 동화적인 감수성, 인디 포크을 병치시키던 시절의 디셈버리스트의 면모를 만끽할 수 있는 앨범입니다. 'The Infanta'의 엄청난 기세로 청중을 압도시키는 좋은 여는 트랙이며, 왈츠풍의 절창 'We Both Down Together'나 어쿠스틱 기타의 조촐한 스트러밍에서 시작해 거대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라로 서사적인 스케일을 늘려가는 'The Bagman's Gambit', 챔버팝과 70s 클래식 록을 적절하게 조합시킨 프로테스트 싱글 '16 Military Wives', 유랑악단처럼 조곤조곤 아코디언을 타고 들려주는 살인 발라드 'The Mariner's Revenge Song' 까지 있습니다.

[Picaresque]는 기본적으로 미국산 얼트 컨트리/포크 계열 음반이지만, 영국발 음악들의 영향도 강한 편입니다. 앨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청명한 질주감은 스미스 같은 영국산 기타 팝의 영향이 강한 편이며, 트위한 어레인지와 그에 대조되는 연극적 터치는 틴더스틱스를 비롯한 챔버 팝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이후 디셈버리스트가 메이저로 올라온 걸 생각하보면 [Picaresque]는 인디 시절 해보았던 실험들과 과정들의 총정리라는 느낌이 강한 앨범입니다. 그만큼 꽉 짜여져 있으며, [The Crane Wife]라는 성공적인 메이저 데뷔 앨범을 이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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