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_이름_종결자
영화광들에게는 더 밴드란 이름은 마틴 스콜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름일 겁니다. 실제로 저도 더 밴드라는 이름을 마틴 스콜세지 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이들의 해산 공연을 담아낸 [라스트 왈츠]라는 영화를 찍었고, 지금도 음악 관련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영화입니다. [샤인 어 라이트]도 그렇고 마틴 스콜세지는 자기가 속한 베이비 붐 세대와 그들이 즐겼던 음악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등장한 1960년대 후반 세상은 사이키델릭으로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해져 있었고, 대부분의 청중들은 새로운 음악을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더 밴드는 슬며서 등장해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Music From Big Pink]와 연타로 나온 이 세임 타이틀 앨범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는 앨범입니다.
더 밴드는 한 마디로 루츠 음악의 복수,라 할 정도로 컨트리, 포크, 랙타임, 로커빌리 같은 록 뒤안에 잊혀져 가던 백인 기층 음악에 경도된 모습을 보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버즈Byrds와 포크 순혈주의자에게 엿먹으라고 가운데 손가락 내밀던 51번 고속도로 시절 밥 딜런, 버팔로 스프링필드가 활짝 열여젖힌 컨트리-포크 록에 속하면서 루츠 음악의 요소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마빈 게이와 샘 쿡, 머디 워터스 등이 언급이 되는 등 소울과 블루스, 나아가 영가 등의 소위 '흑인'의 뿌리에서 출발한 음악들도 이 앨범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이 뛰어난 이유는 자칫 서구적인 관점에 매몰될 뻔한, 흙에 대한 강한 경외감이 서구인들만의 감수성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쓸쓸한 悲感에 도달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 곡.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의 쓸쓸히 밀려오는 아르페지오 기타와 하모니카, 하모니는 그야말로 이의를 달 수 없는 수준입니다. 같은 영토의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늦게 빛을 보았지만-의외로 역사를 찾아보자면 1958년까지 올라갈 정도로 짬밥이 깁니다. 가스 허드슨은 이 앨범 발표할때 이미 30대였고요.-그 장르에서 가장 인상적인 앨범을 뽑아냈습니다. (심지어 먼저 잘 나가고 있던 딜런과 에릭 클랩튼 (연배나 경력은 한창 후배지만)도 반해 이들과 같이 작업하길 원했다는 건 전설이죠. 어찌보면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백인 판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루츠 뮤직에 거부감이 없으시고 카우보이 정키스나 플릿 폭시즈, 그리즐리 베어, 디셈버리스트 같은 쓸쓸한 悲感에 가득찬 얼트 컨트리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궁금하신다면 카트에 넣으셔도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P.S.1 재미있는 것은 이 지독할 정도로 룻시한 음악을 만들어 낸 사람은 한 명 제외-아칸소 출신 미국인으로 유일하게 음악의 뿌리와 일치하는 사람.)하고 캐나다 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같은 모습이 된 건 1967년 온타리오에서였습니다.) 그러고보면 영미권 대중 음악 초창기는 미국인들은 푸대접했던 음악들을 외부인 (영국인, 캐나다인 등등)들이 재발굴하고 빛을 내는 과정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P.S.2 역시 이들의 감수성에 가장 맞닿아있는 문학인이라면 시인 윌트 휘트먼 아닐까 싶습니다. 흙과 민중에 대한 건강한 감수성이라는 공통 분모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다만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했던 휘트먼과 달리 더 밴드의 가사는 쓸쓸하고 비감에 차 있습니다. 좀 더 모호하기도 하고요. 비트닉의 물결과 딜런주의, 68혁명을 겪은 청춘들이 휘트먼을 접한다면 이런 가사가 나올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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