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의 시대
록시 뮤직과 그들이 1972년에 발표한 이 동명의 첫 앨범은 50년대 클래식 할리우드가 뽐냈던 퇴폐의 복권입니다.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이 안정된 경제와 컬러 필름이라는 신 기술 등장으로 과도한 화려함이라는 미학으로 폭발한 시기였죠. (이 미학은 더글라스 서크의 멜로 영화에서 아이러니컬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이들이 입고 다녔던 패션부터 시작해, 가사, 창법부터 시작해 당 앨범의 수록곡인 2 H.B.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이 곡의 HB는 연필심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험프리 보가트를 지칭하는 약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들은 50년대와 70년대 사이에 있는 간극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그 스타일을 소비하는 방식은 50년대처럼 내숭 떨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며 노골적입니다. 당연히 1960년대 성 혁명의 열기와 자유도 녹아있는데, 페리의 중성적이고 모호한 이미지와 이후 발표된 [Country Life] 표지의 헐벗은 여인네들은 50년대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과감함이 녹아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그 자유로움을 철저히 쾌락적으로 이용하고 있죠. 록시 뮤직이 글램을 이야기 할때 빼놓을 수 없는 밴드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글램의 '자극적이고 표피적인 즐거움'에 딱 들어맞거든요. 예술 학교 출신이라는 점답게, 그들은 영리하게 과거의 스타일들을 차용하고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밴드 전체의 성향보다는 보컬인 브라이언 페리 개인의 성향에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Ladytron' 같은 곡에서는 또다른 천재 브라이언인 브라이언 이노의 입김이 많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50년대 SF 영화의 모노 사운드트랙 같은 오케스트라로 시작해 페리의 기름낀 보컬과 비비꼬인 멜로디, 힘껏 치솟는 기타와 신시사이저, 광폭한 색소폰이 인상적인 트랙인데, 후일 이노가 솔로로 전향했을때 내놓은 음악들과 깊은 연관성이 느껴집니다. 특히 'The Bob (Medley)'의 도입부 앰비언트 신시사이저는 꽤나 혁신적입니다.
하지만 킹 크림슨에서 퇴짜당한 페리가 자신의 창의력을 분출하기 위해 만든 록시 뮤직은 필연적으로 페리를 위한, 페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밴드였습니다. 물론 기타리스트였던 필 만자네라도 뛰어났지만, 장인에 가까운 인물이였고 (다들 갈리는 와중에 그만 그대로 있었다는 건 꽤 의미심장하죠.), 결정적으로 이들의 음악은 BACK TO THE 1950's를 주장하는 밴드답게, 음악이나 이미지 모두 강하게 페리의 보컬과 카리스마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습니다. 마치 버디 홀리나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말이죠. (50년대 로큰롤은 재즈 밴드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보컬+쫄따구 장인 연주자들로 이뤄졌죠.) 페리의 승리로 마무리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페리의 나치 유니폼 드립도 이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록시 뮤직의 앨범 커버와 제목을 잘 보시다 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 할 수 있으실 겁니다. 점점 시대가 과거로 올라간다는 점이죠. 특히 마지막 앨범 제목이 아발론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기어이 신화의 영역에 손을 대고 만 것이죠. 그렇습니다. 브라이언 페리는 복고주의자, 보수주의자이자 지독한 탐미주의자입니다. 나치가 추구했던 엄격한 스타일과 극적인 화려함에 빨려들어가는건 당연했던 일이겠죠. 게다가 지금 페리는 영국 보수당 지지자입니다. 이노가 떨어져 나온 후 보위의 베를린 3부작과 실험적인 솔로 작품을 내놓고, 반전과 평화를 외쳤던 것과 더욱 대비됩니다.
스타일 이야기만 줄창 이야기했는데, 음악의 뼈대는 의외로 단순명쾌합니다. 직선적인 50년대 로큰롤과 색스폰과 피아노가 경박하게 폭주하는 카바레 소울 팝에 신시사이저가 주도하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거창한 (하지만 너무 나가지 않는) 스케일이 결합됬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거창한 스케일은 이노의 영향력이고, 저 세 가지는 페리와 나머지 밴드 성원들의 몫입니다. 록시 뮤직이 후일 펑크 록과 포스트 펑크, 나아가 뉴 로맨틱스의 간접적인 선조 중 하나로 기록되는 이유도 이런 단순명쾌함(과 번쩍번쩍한 스타일)과 거창함이라는 모순적인 매력에 있습니다.
솔직히 제가 록시 뮤직의 모든 앨범을 아직 제대로 듣지 못해서 이후 변화에 대해서는 그저 피상적인 말로 설명할 수 밖에 없지만, 평을 들어보면 이 앨범의 스타일을 계속 유지해나가면서 점점 상업적으로 변해갔다는게 중평입니다. 그 중평을 믿는다면, 록시 뮤직의 이 첫 앨범은 앞으로 이어질 록시 뮤직의 영광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한 걸음입니다. 물론 명반이라는 건 두말나위할 것 없고요.
'Headphone Music >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단리뷰] 조정치 - [미성년 연애사] (2010) (0) | 2010.08.27 |
---|---|
XTC - [Skylarking] (1986) (2) | 2010.08.22 |
LCD Soundsystem - [This is Happening] (2010) (0) | 2010.07.20 |
Erykah Badu - [New Amerykah Part Two: Return Of The Ankh] (2010) (0) | 2010.07.08 |
João Gilberto - [João Gilberto] (1973) (0) | 2010.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