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K HELL BOY FROM DETROIT
(2010 보위 믹스를 기준으로 리뷰했습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펑크 록. 그 선조를 꼽으라면 다들 섹스 피스톨즈를 꼽을 것입니다. 하지만 섹스 피스톨즈도 하늘에서 뿅 떨어진 것은 아니죠. 그 중 가장 직접적인 영향이 느껴지는 뮤지션은 바로 이 이기 팝입니다. 1960년대엔 스투지스를 이끌다가, 솔로로 전향해 펑크 록의 씨앗을 개척한 사람이죠.
[Raw Power]는 스투지스를 끌고 만든 세번째이자, (2008년 복귀 이전까지) 마지막 작품입니다. 1973년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름 표기가 미묘하게 바뀌었습니다. Iggy and the Stooges로... 이는 전작들과 달리, 이기 팝의 솔로 이미지가 전면으로 대두되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거의 반해체 상태였다고 하네요.)
아직 스투지스 1,2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서 뭐라 이야기할 수 없지만, [Raw Power]는 여전히 지랄난동 헤비 로큰롤이지만, 전작들에 비해 정돈되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I Wanna Be Your Dog'의 대략 수습이 안되는 아방가르드 풍 뒤틀린 인트로와, 'Search and Destroy'의 제어된 광기를 보면 알 수 있죠. 프로듀서 존 케일(스투지스 1집)과 돈 갈루치(스투지스 2집), 데이빗 보위 (본 앨범) 간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빗 보위이 프로듀서를 맡았다는 점에서 보듯,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글램 록의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과시적이고 힘이 넘치는 기타 사운드가 그렇죠. 하지만 글램 록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화려하고 유희적인 맛은 의외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이기 팝이 내세우는 마초적 야생성과 폭력성이 굉장히 강합니다. 빤스벗고 달려드는 이기 팝의 보컬과 울부짖는 날카로운 헤비 기타 솔로, 무자비한 리듬 세션이 이 야생성을 적절하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기 팝은 "메리 올드 잉글랜드의 기품 있는 분위기는 이 앨범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글쎄, 메리 올드 잉글랜드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보위가 각각 이 앨범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대충 짐작이 가는 구절입니다.
이런 음악을 통해 전하는 감정들도 묵시룩에 가깝습니다. 처음이 '찾아서 부셔버려라'고 마지막이 '죽음의 여행'니 말 다했죠. 그는 앨범 내내 쾌락과 중독, 고통과 몰락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기 팝의 이런 전략은 당시 상황하고는 배척되는 것이였습니다. 이기와 그 일당들은 쾌락의 어두움과 알타몬트 참사로 그 쾌락에 대한 환상이 부숴져 버린 그 순간을 노골적으로 담아내고 있었고, 당시 사회 분위기하고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글램의 핵심인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도 이들이 표출하는 감정은 엔터테인먼트로 즐기기엔 너무 어두웠습니다. 안 팔리는 건 당연지사. 이기 팝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더불어 도취보다 집단적 긴장과 악취를 추구하는, 당시론 희귀한 뮤지션이였습니다. 이 점 때문에 쾌락의 환상을 적극적으로 부수려고 했던 펑크 록의 선조로 남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Raw Power]은 보위가 믹스한 버전(이하 보위 믹스)으로 처음 나왔습니다. 1980년대에 처음 CD화 됬을때도 보위 믹스를 바탕으로 했고요. 그런데 1996년쯤 새로 내면서 이기 팝이 새 믹스 했습니다. 팬들의 투쟁(?) 끝에 2010년 보위 믹스가 마침내 리마스터링을 하고 재발매됬습니다. 제가 보위 믹스 버전 밖에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인터넷에 이기 팝 믹스 음원이 떠돌아다니는 관계로 그것으로 비교해봤습니다.
이기 팝이 무슨 의도로 손을 댄 건지 알겠지만, 지나쳤다는 느낌입니다. 전반적으로 소리가 깨져서 이번 보위 믹스가 가지고 있던 단단한 리듬 섹션과 디테일들을 깎아먹고 있어요. 특히 ‘Your Pretty Face is Going to Hell’은 볼륨이 너무 높은 나머지 소리가 깨져서 보위 믹스가 전해줬던 육중한 마초이즘을 오히려 깎아 먹는다는 느낌입니다. 경망스럽다고 할까요.
아마 이기 팝은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게 폭발적인 리믹스를 원했을겁니다. 하지만 결과물은 실패. 확실히 시끄럽긴 한데, 뭔가 귀 아프고 영 아니다는 느낌이에요. 아마존에서 늙은 아저씨들이 불평하는게 단순히 꼰대들의 투정이 아니였습니다.
보위 믹스의 단점이라면 생각만큼 후련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Search and Destroy 처음 듣고 어?했으니깐요. 하지만 위에 서술한 디테일한 점들 때문에 재청취시 중독되는 맛이 있습니다. 이런 디테일함으로 승부하는 대음량 로큰롤 앨범은 노이즈가든 이후 처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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