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8

프라운랜드 [Frownland] (2007)

《아빠의 천국》 이후 로버트 브론스타인의 《프라운랜드》를 찾아서 보는 사람은 대체로 사프디 형제의 영화를 통해 거슬러 올라온 사람일 것이다. 《아빠의 천국》 이후 편집과 각본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싶어서 말이다. 사실 《프라운랜드》는 개봉 당시엔, 몇몇 영화제와 뉴욕 아트하우스 영화관을 돌다가 사라진 흔한 동네 독립 영화에 가까웠다. 심지어 "근처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최우수 영화상"라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요상한 명칭을 단 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만 흔하다를, 오독하면 안 되는 것이 당시 주목도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물을 보면 오히려 아슬아슬하고 뉴욕 독립 영화계에서도 비타협적인 비주류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는 영화다. 이런 영화를 데뷔작으로 내놓을 생각을 ..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 (1942)

저 유명한 햄릿의 대사에서 따온 제목을 보면 마치 거창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에른스트 루비치의 [사느냐 죽느냐]는 셰익스피어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왕실 암투극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의 시대는 1940년대 폴란드 극단, 즉 동시대다. 이 영화에서 사느냐 죽느냐는 나치 앞에서 이뤄지는 문제다. 그런데 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거창한 레지스탕스 활동이 아니다. 영화는 마치 현재의 암울함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모르는 것처럼 희극적 설정을 깔아둔다. 마리아와 요셉은 반 나치적인 풍자극과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폴란드 배우 부부다. 요셉이 고뇌에 잠겨 있는 동안, 마리아는 자신의 팬인 소빈스키 중위를 만나게 된다. 마리아는 소빈스키에 푹 빠지게 되고 요셉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질투하게 된다. ..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 / 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1972)

2017/04/02 - [Deeper Into Movie/리뷰] - 절멸의 천사 [El ángel exterminador / The Exterminating Angel] (1962)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은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달려가는 차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차에서 사람들이 내린다. 옷차림과 멋진 저택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제목이 지칭하는 부르주아라는걸 알게 된다. 부르주아들은 저택의 주인 부부 앨리스와 앙리 세네샬이랑 같이 밥을 먹으러 왔다. 하지만 앙리는 일하느라 바쁘고 결국 앨리스가 그들과 함께 만찬을 하기로 한다. 여기까지가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라면, 그 뒤부터는 조금 이상해진다. 앨리스와 부르주아들은 고오급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식당의 ..

숏 컷 [Short Cuts] (1993)

2017/04/19 - [Deeper Into Movie/리뷰] -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McCabe & Mrs. Miller] (1971)로버트 알트만의 [숏 컷]의 시작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살충제 헬리콥터다. 중요한 점은 이 헬리콥터에 대한 정보가 보이스 오버 형식을 통해 인물들이 보는 뉴스로 전해진다는 점이다. 도입부의 의도는 명백하다. 알트만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파편화된 사건들을 조합해서 그릴 예정이다. 몇몇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만나겠지만 몇몇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만나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LA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다. 알트만은 이렇게 분절된 개별 캐릭터들을 하나의 영화로 묶는 과정을 헬리콥터-살충제-뉴스를 거쳐 도식화하고 암시한다. 조각나고 분절된 ..

절멸의 천사 [El ángel exterminador / The Exterminating Angel] (1962)

루이스 부뉴엘의 [절멸의 천사]의 첫 장면은 황급하게 노빌의 저택을 빠져나가는 하인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각자 이유를 대면서 저택을 빠져나가지만 그 이유가 알리바이라는건 명백하다. 왜냐하면 저택엔 곧 부르주아들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하인들의 머릿속엔 그런건 안중에도 없다. 이들은 마치 모종의 사실을 깨닫고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야 되겠어라고 외치며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실제로 그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티는 계속되어야 하고, 하인들이 없어도 그들에겐 집사가 있다. 노빌 부부를 위시한 부르주아들은 하인들이 빠져나간것도 모르고 예정된 파티를 하기 시작한다. 맛있는 음식, 멋진 음악, 아름다운 그림들... 부뉴엘은 하인들이 알수 없는 이유로 빠져나갔다..

나의 아저씨 [Mon Oncle / My Uncle] (1958)

나의 아저씨 My Uncle 9감독자크 타티출연자크 타티, 장 피에르 졸라, 아드리안느 세르반티, 루시엥 프레지스, 베티 슈나이더정보코미디 | 프랑스, 이탈리아 | 117 분 | - 자크 타티의 [나의 아저씨]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것은 개다. 우리는 별다른 설명 없이 개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놀고 있는동안 한 남자가 등장해 그들과 놀아주는걸 보게 된다. 타티는 이 장면에 대사를 넣지 않는다. 대신 키가 큰 멀대같은 남자가 자전거를 출근을 하고 일상을 즐기는 장면을 넣는다. 그러면서도 귀신같이 프레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타이밍들을 조절해 어떤 이완과 수축으로 이뤄진 하나의 장관을 만들어낸다. 느긋할 정도로 헐렁하고 순진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조밀하게 짜여진 [나의 아저씨] 도입부는 곧 ..

심플 맨 [Simple Men] (1992)

심플맨 Simple Men 6감독할 하틀리출연로버트 존 버크, 빌 세이지, 카렌 실라스, 엘리나 뢰벤존, 마틴 도노반정보드라마, 공포, 코미디 | 영국, 이탈리아, 미국 | 105 분 | - 할 하틀리은 왜 몰락했을까? 물론 지금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감독에게 몰락이라고 단어를 붙여주는 건 굉장한 모욕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자벨 위페르를 비롯한 괜찮은 배우과 작업하며 미국 영화를 이끌고 갈 거라고 기대받은 감독의 현재는 그렇게 밝질 못하다.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헨리 풀]의 정점으로 할 하틀리는 위트 스틸먼과 함께 제임스 그레이, 폴 토마스 앤더슨, 웨스 앤더슨, 소피아 코폴라, 데이비드 O. 러셀 같은 이름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가 리처드 링클레이터처럼 주류에 투신한 것도 아니..

과거가 없는 남자 [Mies Vailla Menneisyytta / The Man Without A Past] (2002)

과거가 없는 남자 (2005)The Man Without a Past 8감독아키 카우리스마키출연마르쿠 펠톨라, 카티 오우티넨, 후아니 니에멜라, 카이하 파카리넨, 사카리 쿠오스마넨정보코미디, 드라마 | 핀란드, 독일, 프랑스 | 97 분 | 2005-10-14 아키 카우라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는 시작하자마자 캐릭터의 소개 대신 캐릭터의 정체를 지워버리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내내 이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끌고 간다. 허나 영화는 그 대답을 계속 유보하면서 이 정체 없는 남자가 어떻게 밑바닥 생활에서 살아남는지를 주목하게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부터 시작한 이 남자는 구세군에 속한 노처녀 이르마를 만나 연애 비스무리한 것을 시작하게 되고, 여러 일들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