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아사코 [寝ても覚めても / Asako I & II] (2018)

giantroot2019. 8. 14. 23:06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는 도시 전경을 담은 마스터 쇼트에서 시작한다. 이 도시 마스터 쇼트는 초반부가 끝난 이후에도, 장소를 바꿔가면서 제시되는데 마치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어디서 진행하고 있는지 기억해달라는 것처럼 보인다. 중학생들의 불꽃놀이가 터지고 아사코는 미술관에 사진 전시를 보러 간다. 여기서 아사코가 멈춰서 보고 있는 사진은 두 명의 쌍둥이를 찍은 사진이다. 마치 같지만 다른 쌍둥이처럼, 같은 얼굴이지만 다른 정체성을 지닌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걸 예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사코는 미술관에서 바쿠를 만나지만, 둘의 관계는 자기소개가 아닌 우연을 가장한 숨바꼭질 끝에 느닷없는 키스로 시작한다. 그리고 알고 봤더니 그들은 서로의 친구랑 아는 사이라는 '운명' 같은 기연이 이어진다. 아사코와 바쿠랑 친한 오카자키가 말했듯이 "말이 안 되는" 상황인 셈이다. 순정 만화에서도 작위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너무나도 완벽하게 짜인 구도다. 아사코의 친구인 하루요 역시 절대 사귀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될 정도다. 그 말을 증명하듯이 이 말도 안 되는 사랑은 얼마 안 있어 바쿠가 사라지면서 끝나고 만다.

주목해야 할 점은 아사코와 바쿠의 연애가 러닝타임 120분 중 2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끝난다는 점이다. [아사코]는 타이틀이 뜬 후, 도쿄로 배경을 옮겨간다. 그리고 후반부까지 대부분의 이야기가 도쿄에서 진행된다. 이때 하마구치가 관심을 갖는 것은 반복과 차이다. 아사코는 도쿄에서 같은 얼굴, 다른 이름을 가진 남자 료헤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아사코는 료헤이를 보고 몇 번이나 되물어보고 당혹해한다. 아사코는 료헤이를 피하려고 하지만, 사진가 고쵸 시게요의 전시가 도쿄에서 다시 열렸을 때 아사코와 료헤이는 감정적으로 얽히게 된다. 이때 다시 등장한 고쵸 시게오의 사진은 트래킹 쇼트가 아닌, 고정된 쇼트로 제시된다.

두 번의 고쵸 시게오 전 시퀀스는 [아사코]를 이해하는 단서다. 하마구치는 처음 20분 동안 바쿠와 아사코의 연애를 통해 영화의 진행 방식을 세운 뒤, 료헤이가 다시 등장했을 때 진행 방식이 어떻게 달라져 있는지 관객이 인지하길 원한다. 이 변화는 인물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변화기도 하고, 아사코 자신 SELF가 같지만 다른 두 타자 OTHERS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초반부 아사코는 료헤이를 볼 때 유리에 비친 모습으로 인지하거나 시선을 던진다. 초반부 반사된 이미지로 아사코 앞에 등장하는 료헤이야말로 도쿄에서 아사코와 료헤이의 연애 (2) 가 오사카의 아사코와 바쿠의 연애 (1)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사 이미지나 다름없다는 불길한 현기증이기도 하다. 이를 증명하듯이 료헤이와 아사코가 첫 입맞춤을 할 때 하마구치는 갑자기 점프 컷으로 입맞춤을 두 번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후 이어지는 아사코와 료헤이의 연애는 유혹이 아닌 불안과 공포에 기반한 밀고 당기기로 진행된다. 바쿠와 달리 료헤이가 아사코에 빠진 이유는 명확하게 그려진다. 마야를 두둔하면서, 아사코는 이전의 소극적인 모습과 달리 적극적으로 마야를 두둔하는 모습에서 아사코에 올곧고 망설이지 않는 구석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료헤이는 자신이 바쿠랑 닮았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그런 올곧고 망설이지 않는 아사코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연애가 진행될까 싶으면 갑자기 뒤로 물러나는 상황이 지속된다.

이 상황에 대해 료헤이는 직설적으로 말한다.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계속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동일본 대지진이다. 아사코랑 만나기 위해 마야의 [들오리] 연극을 보러 온 료헤이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는다. 그리고 직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밤이 될 때까지 걸어간다. 밤이 되자 료헤이는 다리에서 아사코를 만나고 둘은 처음으로 포옹을 한다. 이때 동선을 살펴보면 료헤이가 기다리고 있던 아사코에 돌아온 모양새이기도 한데, 이는 '반복'에서 비롯된 '귀환'이라는 행위하고도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아사코]의 대지진은 하마구치의 전작보다 연애 서사에서 갑자기 부로 끼어드는 인상이 강한 편이긴 하다. 애당초 원작이 된 소설은 동일본 대지진 이전에 발매된 소설이었고, 역사의 흐름이 언급되긴 하지만 상투적인 설정 위에서 주관적인 시점에서 비틀어진 연애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소설이었다. 어떤 지점에서 [아사코]의 지진은 연애가 잘 진행되지 않을 때 등장해 흔들 다리 효과로 연인들을 이어주게 하는 소도구에 머문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끼어드는 대지진이 과연 소도구에만 머무는 것일까? 그 의문을 대답하듯이 2의 2번째 장이 시작된다. 아사코와 료헤이는 본격적으로 사귀고 있으며, 고양이 진땅을 키운다. 한편 이들은 어느새 결혼해 아이를 가진 마야와 쿠시하시 부부하고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상황 설명이 끝난 뒤, 아사코와 료헤이가 센다이로 가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분명히 외삽적인 장면임에도, 이 흐름에는 꽤 당황스러운 구석이 있다. 새로운 공간 축이 갑자기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사코] 내 장소 관계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이다. 오사카-도쿄-센다이로 말이다. 이런 장소의 추가는 당연하겠지만,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사건에 따른 추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센다이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바쿠의 고향 홋카이도가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하마구치는 센다이를 바다와 해산물의 공간으로 그린다는 점이다. 아사코와 료헤이는 센다이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생선과 해산물을 팔고 먹는다. 그런데 하마구치는 료헤이와 아사코가 센다이에서 주민들과 해산물을 먹을 때, 아사코의 1인칭 시점으로 료헤이가 해산물을 먹는 쇼트를 찍었다. 다음 쇼트에서 아사코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있는 걸 보면 이 쇼트는 사적인 기록으로 보존될 순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왜 료헤이가 해산물을 먹는 장면을 녹화할 때 아사코의 눈으로 봐야 했는가? 이 시퀀스에서는 그 답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시퀀스에서 찾아야 하는데, 답은 엉뚱하게도 봉사활동 시퀀스가 아닌 아사코가 오사카로 돌아가기 전 환송 모임 시퀀스에서 등장한다. 여기서 아사코는 센다이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틀린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후쿠시마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 근처에서 자라야만 하는 해산물을 먹는 료헤이의 모습을 목격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아사코의 모습은, 커피포트를 돌려주면서 '술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지라 물의 귀중함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료헤이의 속내와 공명하면서 대지진 이후 새로운 윤리가 만들어져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환송 모임 시퀀스는 동시에 아사코가 잊고 있었던 바쿠가 본격적으로 돌아오는 시퀀스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환송 모임 시퀀스는, 연애 영화로써 선택을 다루는 [아사코]와 대지진 이후의 일본인의 삶을 다루는 [아사코]가 만나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첫 번째 봉사활동 장면 이후 하마구치가 준비한 사건은 다름 아닌, 오사카 시절의 귀환이다. 사랑니 치료를 위해 외출한 료헤이와 아사코 앞에 아사코의 친구 하루요가 다시 나타난다. 하루요는 아사코에 바쿠가 돌아왔음을 알린다.

이 소식을 들은 아사코는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아사코는 단호하게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밝힌다. 마야와 하루요랑 같이 텔레비전 보던 아사코는 바쿠의 광고를 보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광고는 신용카드 관계다. 관계에 신용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바쿠에는 어울리지 않는 광고다) 적당히 무마하려는 하루요의 말을 대신해 사실을 고백한다. 아사코의 이런 모습은 초반부 료헤이의 연애에서 보였던 모습에서 확실히 진화했다는걸 알 수 있다. 직후 료헤이에게 사실을 얘기하는 부분 역시 '틀린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관점에서 이뤄진 행동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사코의 이런 선택은 료헤이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쉽게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아사코의 고백과 료헤이의 평정심이 평화롭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바쿠가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는 점이다. 하지만 [아사코]는 바쿠를 기어이 그들 앞에 귀환하게 만들면서 선택의 문제를 난제로 만든다. 촬영지에서 차를 타고 떠나는 바쿠에 손을 흔든 직후, 이삿짐을 싸던 아사코는 진땅을 안고 손을 흔든다. 그런데 이때 갑작스럽게 아무것도 없는 반응/리버스 쇼트가 등장한다. 아사코는 대체 누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바쿠를 통해 제시된다.

아사코는 여기서 자신이 취한 이별 방식이 어설펐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시 환송 모임 시퀀스로 돌아와서, 갑자기 나타난 바쿠는 이렇게 말한다. "역시 기다리고 있었잖아." 바쿠의 이 말은 공포 영화의 귀신이 복수하기 위해 희생자에게 저주를 내리는 대사와 동일하다. 어떤 지점에서 바쿠는 매우 전지적으로 행동하는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다.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지적했듯이 바쿠는 대체 환송 모임 장소를 어떻게 알고 왔단 말인가? 이 전지성을 지닌 옛 연인 앞에서 아사코는 다시 선택해야 한다.

관객은 논리적으로는 답을 알고 있다. 아사코가 유예된 이별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바쿠하고 어떤 식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연애물이라는 장르에서 보자면 아사코의 선택은 암묵적인 금기를 깨트리고 있다. 왜냐하면 연애물에서는 여성이 잘 이어가는 관계 도중 옛 남자 친구를 선택하는 것은, 현 남자 친구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배신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비 처녀 논란 같은 지점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정조와 헌신을 강요하는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라는 문화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대지진 직전 등장한 입센과 체호프의 연극들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작품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체호프의 [세 자매]는 현실과 이상적인 꿈에 대한 괴리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을 깨닫고 이별하는 여성이 등장했고, 반대로 입센의 [들오리]는 평온한 관계가 실은 거짓으로 덮여있다는 걸 알고 비극에 치닫지만, 다시 새로이 시작하는 부부의 얘기를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언급할 때 [아사코]는 감정 이입하지 말라고 주문하거나 ([세 자매]), 연극이 지진으로 중단되어버린다. ([들오리]). [아사코]는 왜 이런 문학적 모티브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이입하지 말라고 말하거나 중단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사코]에서 아사코가 처한 상황이 두 작품의 유사성과 연계성은 있되, 독자적인 상황으로써 객관적으로 관찰해달라는 걸 하마구치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아사코는 바쿠를 따라가지 않고 떠내 보낸다. 여기서 다시 아사코가 왜 최종적으로 바쿠가 아니라 료헤이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첫째로는 연애물에서 볼 수 있는 가치 판단과 기준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쿠는 처음부터 끝까지 멋대로 행동하고, 아사코의 기분을 이해하는 언동을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같이 살기엔 부적합한 인물이다. 드라이브 시퀀스의 차이가 대표적일 것인데 좀 더 자두라고 말하는 료헤이랑 달리 바쿠는 자기 얘기만 할 뿐이다.

[아사코]가 흥미로운 점은 이런 연애 영화로써 감정 이입과 선택의 문제를 끊임없이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사건이 외삽의 한계를 무릅쓰고 얽혀 들어간다는 점이다. 센다이에서 연애의 종지부가 난다는 점도 그렇고, 아사코와 바쿠의 연애는 바다에서 끝난다. 바쿠는 바다를 보지 않았다. 정확히는 거대한 방파제를 보고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바쿠를 떠나보낸 뒤, 아사코는 무엇을 하는가? 방파제를 올라가 바다를 본다. 아사코는 끊임없이 자신의 눈을 통해 확인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속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아사코가 방파제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는 시퀀스가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이 부분에 있다. 연애 관계에서 자신의 주체를 잡으려는 의지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방사선 누출이라는 비극을 인정하고 나아가려는 일본인의 다짐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다시 남겨진 료헤이에게 돌아가 보자. 바쿠의 손을 잡고 떠나가는 아사코를 찍는 트래킹 쇼트는 그 점에서 1부의 아사코와 친구들을 놔두고 떠나는 카메라의 트래킹 아웃 쇼트와 닮아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트래킹 쇼트의 피사체가 달라져 있다는 점이다. 1부에서 트래킹 아웃 쇼트는 아사코와 친구들을 남기고 떠난다면 2부에서 미묘하게 구도가 달라진 트래킹 아웃 쇼트는 료헤이와 친구들을 남기고 떠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아사코의 1인칭을 포기하자 바쿠에 대한 료헤이의 공포가 구체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아사코와 바쿠가 떠나자 료헤이의 반응 쇼트는 예감한 표정으로 침묵과 분노의 표정을 짓고 있다.

료헤이의 예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먼저 성적 매력의 부족함이 있다. 료헤이와 바쿠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매력을 지닌 남자는 바쿠다. 아사코랑 재회한 후, 예전에 괜찮다고 말한 건 거짓말이라고 털어놓기까지 한다. 바쿠는 그 점에서 료헤이의 거울 쌍이 만들어낸 억압된 악몽이다. 이런 연애 라이벌로서 두려움과 더불어 대지진 문제와 엮어서 본다면, 대지진 이후 '모든 게 정상적이었던 대지진 이전 일본의 귀환'에 대한 일본 남성성의 공포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독해의 여지는 료헤이는 왜 아사코의 선택에 분노하는가? 에 대한 답을 제공하기도 한다. 료헤이의 관점에서 아사코는 '대지진 이전 우월한 전 남자 친구를 선택하고 대지진 이후 열등한 자신을 버린 여자'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 부분은 료헤이에게 생긴 트라우마를 아사코가 어떻게 설득하는가에 대한 과정이기도 하다.

비록 연애 영화로써 서사 장치가 동일본 대지진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아사코]의 강점은 관계의 허울성과 추한 감정을 인정하며 시간을 껴안고 살아간다는 행위에 긍정함에 있다. 하마구치는 함께 한 시간이 위태한 위장이라고 해도,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하마구치는 아사코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오사카 인물들에게 시간의 흔적과 더불어 긍정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작과 달리 하루요가 아사코랑 절교하지 않게 된 점이 대표적일 것이다. 에이코가 들려주는 연애사의 비화는 원작에서도 있던 부분이라 넘어가도, 왜 하루요는 아사코의 선택을 일부 긍정했을까?

여기서 오사카로 대표되는 칸사이 지방이 이미 고베 대지진을 겪었던 지역이라는 걸 떠올려야 할 필요가 있다. 각색된 하루요의 긍정은 어떤 점에서는 에이코의 비화와 상응하는 구석이 있다. 이 변화는 이미 대지진을 겪은 오사카에서 현 일본의 난제에 대한 지혜를 구하려는 시도이며, 하마구치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사건 이후에 [아사코]의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느꼈던 의무감의 일종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동일본 대지진은 고베 대지진과 달리 방사능 오염 같은 더 큰 난제가 있으며, 트래킹 쇼트로 절박한 추격전을 벌인 후에도 아사코와 료헤이의 관계는 여전히 깨진 채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아사코는 진흙 강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아사코]는 불가항력으로 더러워졌더라도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용기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삶에서 필요하다고 말하는 영화다. [아사코]를 통해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감독을 지지하고 싶다면, 그 자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