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단상

Yo La Tengo Live in Seoul 20161130

giantroot2016. 12. 15. 23:43

야광 티켓입니다.

공연 중 사진 촬영 금지였기에 올리는 건 이 정도로 ㅇㅇ '시끄러운 셋' 시작 직후 찍은 사진입니다.

좀 뒤늦었지만 올려봅니다. ㅇㅇ 썩을 티스토리 과거 글 현재 시간 발행 기능 왜 없앴냐...

요 라 텡고가 처음 내한했을 당시엔 꼭 가고 싶었던 공연이였는데, 그때 제 사정이 좀 암울하기도 했고 결정타로 돈이 없어서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놓치고 난 뒤 3-4년 내에 재내한할줄 알았죠. 그런데 8년이나 걸렸습니다...사실 이번 내한 소식도 좀 뒷북으로 알아서 (...) 얼리버드 티켓 다 놓치고 현매로 표를 구했습니다. 출혈이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유 자금이 있어서 어찌 버텼네요.

사실 제가 단독 공연을 본 게 서니 데이 서비스&소카베 케이이치 내한하고 소카베 케이이치 일본 공연 밖에 없었습니다. 둘 다 바를 겸업하는 소규모 공연장였기에 중대형 공연장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악스홀? 사운드마인드? 롤링홀? 그런거 몰라요... 집에서 음악 듣는 방구석폐인 웅엥웅 쵸키포키...  그랬던 제가 무브홀에 가다니 요 라 텡고를 참 좋아헀긴 좋아했나 봅니다.

집에서 홍대까지가 가까운 곳은 아닌지라 좀 일찍 나와서 표 받았습니다. 그 뒤 저녁 먹고 시간 떼우다가 (좀 헤맨 뒤) 다시 돌아갔는데 그 사이에 줄을 많이 섰더라고요. 그래서 앞에서 못 보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일찍 온 보람은 있는지 나름 앞자리 차지하는데는 성공. 무브홀 자체는 깔끔하게 보기 좋더라고요. 

근데 와... 사람 많더라고요. 공식 추산 600명이라는데 공연 시작할 쯤엔 꽉꽉 들어차는 바람에 나중에 쉬는 시간에 나가지도 못하고 걍 앉았습니다. 나가면 못 돌아오겠다는 공포감이 들더라고요. 언제 될지 모르지만 다시 내한 올 정도의 관객이었습니다. 누가 말하길 "홍대 인디 밴드 및 모소모 송년회"....

고지받은 대로 처음엔 '조용한 셋'부터 먼저 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나온 곡은 몰랐지만 'Big Day Coming' 나올땐 나름 공연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조지아 허블리는 브러시 드럼 치고 제임스 맥뉴도 거대한 콘트라베이스로 연주하는 등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친밀한 느낌이었습니다. 

조용한 셋 좋긴 했습니다. 짬밥 때문에 연주나 무대 매너도, 편곡도 깔끔하고 (어쿠스틱 기타랑 브러시 드럼으로 잔잔하게 편곡했는데도, 곡 자체의 매력을 잃지 않더라고요), 공연 음향도 빵빵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모르는 곡들이 좀 섞여 있었고, 개인적으로 '시끄러운 셋'에서 듣고 싶던 'Big Day Coming', 'Deeper into Movies'가 '조용한 셋'으로 나온게 좀 아쉬웠습니다. 

원래 요 라 텡고가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가 상당히 상이한걸로 유명하고 조용한 셋 버전도 좋아서 조용히 제창하긴 했지만 역시 노이즈로 지져주는 맛이 있는 곡들이라... 그래도 좋아하는 곡인 'Black Flowers'랑 'Friday I'm in Love' 나왔을때 감동은 진짜... 녹화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습니다. 

공연장이 좀 후덥지근한데다 체력이 고갈되니 후반부로 갈수록 입고 있던 코트가 부담되더라고요. 못 버틸 정도는 아니였지만, 조용한 셋 끝나고 나서 결국 약간의 민폐를 감수하고 퍼질러 앉았습니다. 앉고 나니깐 좀 낫더라고요. 한편 코트는 벗긴 벗었는데 보관하기 난감해서 고민 끝에 허리에다 묶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시끄러운 셋은... 조용한 셋 좋은거에 100배로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딩딩딩 띵 딩 띵~ 하면서 'Mr. Tough'가 나오자마자 저는 혼절하는 줄 알았고 'Before We Run'로 서서히 고양시키더니 'Shaker'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기타 노이즈로 조져주는게 아주.... 소카베 케이이치가 기타 조져주는 수준도 장난 아니였지만 아이라 카플란이 온갖 코드를 넘나들며 기타 조져주는건 그냥 와... 그냥 그 자체로 완결된 예술이더라고요. 

근데 이게 끝이 아니였습니다. 'Tears are in Your Eyes'로 잠깐 쉰 뒤, 'Sudden Organ'로 다시 기타와 오르간이 불을 뿜기 시작하고 'Autumn Sweater'부터는 그냥 펄펄 날아댕기더라고요. 'Sugarcube'-'Ohm'에 이르러서는 떼창을 하지 않는 청중들이 못내 원망스러웠고 (아니 이 라이브에 떼창을 안해?!!?) 기타 속사와 즉흥 연주에 담긴 노이즈로 밤풍경으로 그려내는 대작 'I Heard You Looking'를 들을땐 그냥... 너무 행복해서 할말이 없더라고요. 오르간과 기타, 보컬을 넘나들며 무대를 장악하는 아이라의 조용한 카리스마가 굉장했습니다. 다리도 저릿하고 체력도 바닥이 났음에도 너무 행복해서 힘든 거 다 까먹었을 정도였습니다. 아이라 아저씨 저희 아버지보다 1살 연하라는게 사실입니까?? 과..과연 60세!!

사실 제게 이 공연에서 유일한 단점은 공연 시간이 긴 나머지 앙코르 들을때 열차 끊기는걸 걱정하고 있었다는 점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라운드앤라운드 쪽 운영이 미흡한건 지적해야 되겠지만...) 앙코르도 인심 좋게 세 곡이나 해서 (내심 라이브로 듣고 싶었지만 안 나오나 싶었던 'Today is the Day'이랑 'Luci Baines' 진짜 최고였습니다.) 저는 행복해하면서도 열차 시간... 집에 어떻게 가지... 이 생각 때문에 사인도 못받고 머천다이즈도 못 사고 공연장 탈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일찍 나왔음에도 또 길을 헤매는 바람에 엄청 힘들게 막차 탔네요

역시 밴드 30년 짬밥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는걸 보여주는 멋진 공연이였습니다. 아이라랑 조지아가 저희 부모님 또래여서 그런지 친근감과 동시에 무병장수를 기원하게 됩니다. 무병장수 백년해로 재내한 간절히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