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단상

낙관주의를 냉소한 노이즈: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소닉 유스

giantroot2014. 7. 14. 16:45


(과제용으로 제출한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노이즈가 어떤 개념의 ‘소리’인지 정의를 내려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노이즈란, “음악의 규칙으로 환원될 수 없고 따라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모든 소리(잡음)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20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노이즈는 음악사에서 배격되어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의미’가 없어서 메시지를 담을 수 없고, 불편함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노이즈는 현대음악가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왜일까?


개인적으로 노이즈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파시즘 같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히틀러는 “증폭스피커 없이는 독일을 정복할 수 없었을 것”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그들이 선호한 음악은 영웅적인 서사와 화음이 담겨있는 바그너였다. 그렇기에 히틀러의 재앙에서 살아남은 음악가들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소리인 노이즈를 음악적 화법에 넣으면서 일사불란한 힘을 가지고 있는 파시즘의 미학을 파괴하는 용도로 쓴 것이다. 이를 통해 노이즈는 단순히 듣기 싫은 소리에서 미학적인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현대음악의 노이즈 사용은 곧 대중음악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대중음악에 노이즈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그리고 그 선두엔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밴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냉소적인 노이즈는 후대 밴드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 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소닉 유스를 통해 그들이 노이즈를 통해 무엇을 냉소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1965년 뉴욕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로큰롤에 노이즈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밴드로 불리는데, 사실 이 밴드가 추구한 음악은 성향이 다른 두 중심 멤버의 시너지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먼저 존 케일은 영국에서 클래식과 현대 음악을 전공하고 초기 플럭서스 운동에 영감을 받아 라 몬테 영이나 시어터 오브 에서럴 뮤직 같은 아방가르드 뮤지션들과 협업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든 사람이며, 반대로 루 리드는 두왑과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음악을 흠모하며 개러지 록 밴드들을 전전한, 대중음악과 로큰롤의 뿌리가 가까운 사람이였다. 


이 둘이 뭉쳐서 만든 음악은 당시 로큰롤의 조류하고는 거리가 먼 음악들이였다. 당시 비틀즈와 버즈를 위시한 로큰롤은 화음과 멜로디 중심으로 청자들을 끌어들이며 낙관적인 도취감으로 가득찬 사이키델릭을 추구했으나, 이들이 만든 첫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은 전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낙관적인 도취감 대신 그것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끊임없이 비올라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포근함을 방해하는 ‘Sunday Morning’부터 ‘Venus In Furs’나 ‘Heroin’ 같은 곡에서는 로큰롤의 비트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여도 전자 비올라와 기타가 음정을 무시하며 노이즈를 만들며 단조로우면서도 최면적인 드론 사운드로 청자의 귀를 방해한다. 간신히 남아있는 멜로디만이 그 노이즈에 청자들을 접근할 수 있도록 가교가 되어준다. 가사는 약물 중독과 사도마도히즘 같은 성적 일탈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며, 스포큰워드에 영감을 받은 루 리드의 보컬은 뻣뻣하고 냉담하게 그 메시지들을 중얼거린다.


이들의 노이즈 성향은 다음 작인 [White Light/White Heat]에서 존 케일의 성향이 강해지는데, 상술했던 라 몬테 영과 시어터 오브 에서럴 뮤직 같은 현대 음악가들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느껴진다. 멤버들의 불화를 반영하듯 당시로ᄊᅠᆫ 극한에 다다른 노이즈는 로큰롤이라는 형식을 잡아먹어버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청자를 공격하는 청각적인 괴물이 된다. ‘White Light/White Heat’나 ‘Sister Ray’에서 밴드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구조로 이뤄진 노이즈는 불온한 내용들을 기계적으로 외치는 루 리드의 목소리를 뒤덮어버리고 그 자체로 순수한 음향 덩어리가 되어 굴러간다.


이런 음악적 경험에서 청자들은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자신들이 속한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왜 그들은 당대의 ‘낙관주의’에 대해 냉소적으로 보고 있을까?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트라는 문화를 언급을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단어일 비트는 1950년대부터 대두되기 한 새로운 청년 문화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기고만장해진 ‘위대한 미국’을 조소하며 방탕한 삶을 즐기며 퇴폐적이고 저급한 것들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당시 비트를 대표하는 문학 작가로는 앨런 긴즈버그와 잭 케루악, 윌리엄 버로우즈, 게리 스나이더, 닐 캐시디가 있으며 주로 찰리 버드 같은 재즈 음악을 숭앙했다.


물론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결성될 당시엔 청년 문화로써 비트는 이미 히피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상태였고, 존 케일과 루 리드도 비트 세대보다는 한 세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였다. 하지만 비트에서 히피로 청년 문화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비트 문화 내에서 대표적인 비트 세대였던 잭 케루악과 앨런 긴즈버그 간에 있었던 논쟁은 히피 세대와 비트 세대가 어떤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차이점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히피 세대는 ‘참여적’이고 ‘유토피아 공동체’에 대한 낙관이 강했다면 비트 세대는 ‘고립적’이고 ‘유토피아 공동체 자체에 대해 냉소적’이였다. 실제로 논쟁 이후 긴즈버그는 히피 세대와 함께하기 시작했고 케루악은 불교를 통해 영적인 구원을 얻고자 했다. 패션 스타일 면에서도 비트 세대는 검은 선글라스와 어두운 색깔을 즐겨 썼다면 히피 세대는 밝은 옷과 원색을 즐겨 썼다.


따라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로큰롤의 구조와 멜로디 자체를 방해하고 나중엔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노이즈는 히피 세대가 추구했던 유토피아 공동체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는 냉소가 담긴 예언이었으며, 동시에 그 문화적인 대격변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종한 생활을 이어가는 개인들을 그려내는 붓이였다. 그리고 그 붓이 ‘상업 이미지의 대량 복제를 통해 기존 미학의 해체’라는 개념을 도입한 팝아트 주자인 앤디 워홀과 현대 음악의 영향력을 받았다는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노이즈를 통해 ‘부패한 이면’을 그려낸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당대 대중음악계엔 인정받지 못하고 단명해야만 했으나 곧 추종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한정지어서 보자면 뉴욕 돌즈를 통해 노이즈로 당대의 로큰롤을 해체하고자 했던 펑크 록이 탄생했고 이 펑크 록은 1980년대에 소닉 유스가 등장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우선 강하게 대두되는 노이즈, 냉소적으로 읆조리는 보컬 등은 벨벳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소닉 유스는 그 노이즈를 본격적으로 변칙 튜닝을 통해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픈 튜닝을 사용해 개방 현들이 하나의 코드로 화음을 이루게 하는” 변칙 튜닝은 실제론 대중음악에서 잘 쓰이지 않는데, 그 이유로는 음색이 튀어서 멜로디를 만들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변칙 튜닝을 썼다는 점은 소닉 유스가 노래 구조 자체를 노이즈에 적합하도록 변혁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Daydream Nation]에 실린 ‘Eric’s Trip’은 그런 노이즈와 변칙 튜닝 간의 시너지를 잘 볼 수 있는 곡인데 일반적인 로큰롤 구조가 탈력적인 변칙 튜닝와 노이즈를 통해 기괴하게 무너지는 음악적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벨벳 언더그라운드도 오픈 튜닝을 도입하긴 했으나, 소닉 유스는 이를 의식적으로 쓰고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변칙 튜닝을 소닉 유스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처럼 현대음악가라는게 여러모로 재미있다. 소닉 유스가 영향을 강하게 받은 현대음악가는 글렌 브랑카다. 그는 변칙 튜닝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밴드의 구성을 혁파해 기타를 비롯해 일반적이지 않은 악기를 여러 대를 배치해 ‘연주’가 아닌 ‘노이즈’를 비롯한 ‘음향 설계’를 노렸는데 이는 소닉 유스의 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변칙 튜닝을 통해 나오는 강렬한 노이즈 속에서 소닉 유스가 냉소하는 것은 1980년대 레이건 체제 속에서 낙관적인 환상에 젖은 미국과 그것들의 첨병이였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같은 정교한 화성으로 주류 팝 음악 체제다. [Daydream Nation]에 실린 ‘Teen Age Riot’은 노이즈 기타를 연주하는 영웅이 (이 영웅의 모델은 후배 밴드였던 다이노서 주니어의 J 매시스라고 한다.) 10대들을 폭동으로 이끈다는 가사를 담고 있으며, ‘The Sprawl’는 사이버펑크의 대부 윌리엄 깁슨을 인용해 당시 발전하던 사이버 세계를 상상하고 있으며, 연주곡 ‘Providence’는 멀찍이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알듯모를듯한 소리 콜라주와 고장난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노이즈가 황폐한 심상을 그려내고 있다. 좀 더 대중화 된 [Dirty]에선 ‘Youth Against Facism’ 같은 노골적인 파시즘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Daydream Nation] 발표 직후 마돈나의 미들네임을 가져와 치콘느 유스라는 이름으로 마돈나의 곡들을 해체한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구체적으로는 변칙 튜닝의 구조 속에 녹아든 노이즈가 1980년대 말 미국의 청춘들의 냉소적인 심리상태를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닉 유스가 19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는건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결론을 내리자면,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소닉 유스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노이즈를 받아들인 현대음악계가 어떻게 대중음악계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런 노이즈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낙관주의를 냉소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밴드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