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브루드 [The Brood] (1979)

giantroot2012. 10. 2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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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드

The Brood 
8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
출연
올리버 리드, 사만다 에가, 아트 힌들, 헨리 벡맨, 누알라 피츠제럴드
정보
공포, SF | 캐나다 | 92 분 | -


(누설이 있습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브루드]는 아직 크로넨버그가 공포 영화의 자장에 있던 시절, 그것도 제법 초기에 만들어진 영화다. 샴쌍둥이에 대한 기괴한 사이코드라마 걸작 [데드 링거]로 점점 호러 장르에서 벗어나는 크로넨버그지만 [브루드] 같은 걸 보면 이런 [데드 링거] 같은 영화들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게 아니라 나름대로 꾸준한 흐름을 만들며 온게 눈에 보인다.


혁신적인 치료 방법으로 환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정신과 의사 할 라글란 박사에겐 노라 카베스라는 환자가 있다. 노라의 남편 프랭크는 이런 치료 방법을 못마땅해하고 있다. 그 와중 노라가 아이 캔디스를 학대하는게 눈에 보이자 프랭크는 소송을 걸어 캔디스를 찾아오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프랭크의 시도는 곧 이상한 살인 사건들로 가로막히게 된다.


[브루드]의 초반부는 평범한 정신과 치료를 소재로 한 가족 드라마로 보인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영화는 냉정하고 차분하게 (절대로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영화는 아니다!) 정신분석학과 여러 이론들을 깔아놓음과 동시에 아이의 상처들과 광기가 넘치는 노라를 통해 불길한 복선들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세 건의 살인을 통해 평온한 일상 아래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존재가 만드는 미스테리를 서서히 폭로하고 동시에 가족 드라마 이미지를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저예산이여서 그런지 약간 티가 나는 부분도 있지만 이런 살인 장면들의 쇼크 효과와 서스펜스, 리듬 감각은 능수능란하며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폭로되는 "진상"에 가선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브루드]는 처음과 끝의 인상이 상당히 다르다.


그 사이에 [브루드]는 크로넨버그적인 '신체의 변형'을 통한 상상력과 표현을 뽐내기도 한다. 정신병 환자의 목에 난 종양, '브루드Brood' 즉 '족속들'의 기괴한 이미지와 SF적인 설정,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상"과 노라가 보이는 행동... 크로넨버그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파격은 그야말로 독특하기 그지 없다. 어찌보면 [브루드]는 후기 크로넨버그보다 훨씬 크로넨버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짚어내기 쉬운 영화기도 한데, 그것은 아마도 크로넨버그의 꾸준한 철학적 관심사가 훨씬 직설적인 장르적인 장치로 드러나 있어서 그럴것이다. (그렇다고 후기 크로넨버그가 직설적이지 않다는 건 아니다. 크로넨버그는 다른 "예술 영화" 감독들에 비해 상당히 직설적으로 말하는 바를 던지는 영화 감독이다. 아마 이런 파워는 B급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거리라.)


크로넨버그는 노라의 분노를 먹고 행동하는 "족속들"의 알고리즘을 통해 '무형'의 정신이 만드는 변형이 '유형'의 '족속들'로 드러나는 과정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정신은 (육체로 대표되는) 물질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물질 세계의 변화 역시 정신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크로넨버그에게 이 관계는 우로보로스적인 관계로 단순히 한쪽이 한쪽에게 종속된게 아니다. 그의 장기인 '신체 변형'은 그런 관계가 극에 달했을때 생기는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크로넨버그는 거기서 한발짝 더 나간다. "족속들"이 캔디스를 닮았다는 설정과 탄생 과정은 생식에 대한 터부를 마구 깨트리고 있으며 노라가 "족속들"에게 보이는 애정(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반응)과 "가족"이란 개념에 대한 집착, 그런 원동력엔 노라의 과거사가 엉켜있다는 점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해석을 해볼수 있을것 같다. 결국 노라는 학대받은 과거와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로 대표되던 '전통적인 가족'을 거부하고 족속들로 이뤄진 '새로운 가족'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 행동하는 '숙주'로 이뤄진 가족. 클라이맥스 돌입 직전 라글란이 프랭크에게 '당신이 새로운 발전의 징검다리가 되야 한다' 식으로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 집착의 결과는 과히 예쁘지 않았고 결국 라글란은 죽고 노라는 딸을 찾으려는 '가부장' 프랭크의 단죄를 받게 된다. (아내에 대한 사적인 분노에서 나온 결말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크로넨버그가 겪었던 이혼 소송을 뺴놓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족의 행복'을 옹호하는 결말은 절대 아니다. 외려 폭력의 대물림이 만들어낸 비극이 이어지며 그것을 이해하고 끊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는 비관적인 시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노라는 괴물이긴 했지만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였고 영화 내내 보여줬던 분노들은 개연성이 있었다. 결국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자의 분노가 비극을 만든 것일까.


[브루드]는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그만의 독특한 철학들이 드러나고 올리버 리드와 사만다 에거 등 배우들의 잊을수 없는 명연이 영화에 박혀 있지만 공포 장르에서 벗어나 액션과 느와르, 역사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신출귀몰하는 중후기 크로넨버그와 달리 아직 공포 영화의 자장 속에서 머무르며 자기만의 말하는 방식을 찾고자 하는 물색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B급 영화의 "돌직구"와 젠체하지 않는 지성이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이 합쳐 만들어내는 귀기는 왠만한 최신 공포 영화들을 박살내기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