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잡담

R.E.M. - We Walk

giantroot2012. 1. 24. 19:14


R.E.M.이 이해가 가질 않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버즈와 디셈버리스트를 겪은 지금은 이제 아닙니다. 이젠 뭔가 알것 같다고 할까요. R.E.M.의 첫 앨범 [Murmur]은 정말 모호하고 조금 쌀쌀한데 귀여워요. 절대 친절한 앨범은 아니지만 뭔가 츤데레한 맛이 있다고 할까요.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텔레비전, 패티 스미스, 필리스, 갱 오브 포 같은 다소 신랄한 펑크 미니멀리즘과 60년대 개러지 록의 전통, 버즈와 러빙 스푼풀 같은 쟁글쟁글 컨트리/포크 기반 팝스가 결합된 앨범인데 (물론 디비스와 빅 스타 같은 파워 팝도 빼놓으면 안 되겠죠.) 가사도 그렇고 앨범이 안개에 낀듯한 희뿌연 느낌입니다. 모호한 중얼거림, 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할까요. 하지만 그 멜로디는 그 안개 속에서도 듣는 사람을 무심하게 잡아끌어 어떤 심상으로 인도합니다.

특히 그 귀여움은 이 트랙에서 한껏 발휘됩니다. 그냥 무심하게 불러제끼다가 딸꾹질하듯이 곡을 마무리하는 마이클 스타이프의 보컬과 쟁글쟁글한 기타가 뒤에 앰비언스로 잔잔히 깔리는 드럼 사이를 헤매다가 마무리짓는게 지금과 같은 쌀랑한 날씨에 아무렇게나 휙휙 걸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1980년대라는 시대 상황하고는 정 반대의 길을 가려고 했던 앨범이고,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앨범입니다. 특히 하드코어의 발악이 짓밟히고 사그라들던 시대에서 남부에서 조용히 치고 올라왔다는 점에서 그들은 '얼터너티브'나 현 '미국 인디'의 중요한 기둥을 세웠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그전부터 60년대 개러지 록이라던가 미국 인디라는 도도한 흐름이 존재했고 R.E.M.도 크게 보면 그 흐름 속에 있었지만 끝내 메이저로 올라와 세계구급 스타가 된 밴드는 R.E.M.이 최초일겁니다. 그 뒤로 소닉 유스와 미트 퍼펫츠, 허스커 듀, 픽시즈, 너바나등 많은 밴드가 메이저 진입 루트를 따랐고요. 하지만 소닉 유스 제외하면 다들 오래 살아남지 못했고 이젠 소닉 유스도 인디로 내려온 마당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버틴 그들의 존재는 소중합니다.

그렇기에 R.E.M.은 마이클 잭슨과는 다른 의미로 1980년대 미국 음악이나 풍속사를 알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할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두 스타 모두 최근에 생을 마감했군요. 잭슨은 죽었고 R.E.M.은 해체했습니다. 시대가 끝나가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