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Paul McCartney & Wings - [Band on the Run] (1973)

giantroot2011. 1. 17. 22:36

여사님를 통해 아방가르드와 공명하면서 과거의 영광 더 나아가 전통적인 록/팝을 탈주하려고 기를 쓰던 존 레논과 달리, 폴 매카트니의 솔로 행보는 작곡에 재미들린 한 천재가 미친듯이 멜로디를 뽑아내고 그것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경지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아마 이 앨범 [Band on the Run] 아닐까 싶습니다.

이 앨범은 나름 위기라면 위기인 상황에서 (밴드 멤버 탈퇴, 강도 사건) 아내와 대니 레인 정도로 간출하게 꾸린 라인업으로 만든 앨범입니다. 실질적으로 폴 매카트니 원맨 체제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 앨범은 여전히 밴드라는 기본 명제에 충실한 연주와 멜로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한 솔로보다는 매카트니와 멤버, 나아가 세션 간의 조화를 중시하고 있다고 할까요. 돈지랄이 될 뻔했던 오케스트라도 의외로 적절하게 치고 빠지고 있습니다. (이 편곡을 들어보면 폴 매카트니가 왜 필 스펙터의 렛 잇 비에 반대했는지 어느 정도 예측됩니다.)  비록 전반적으로 단출한 구성이지만 'Nineteen Hundred and Eighty-Five'나 'Picasso's Last Words (Drink to Me)" 같은 곡에선 리프라이즈 개념과 대곡 지향을 예리하게 이용해 앨범의 테마와 구조를 확실하게 세우고 있습니다.  물론 매카트니의 특1급 팝 센스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죠.

가사에선 도피에 대한 매혹이 느껴지는데, 이런 매혹에 대한 감정들은 송 사이클 (곡 안에 작은 이야기나 컨셉 앨범의 컨셉을 설명하는 곡을 일컫는 단어. 원래는 클래식 용어입니다.)의 형식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탈옥이라는 소재로 답답한 세상에 대한 도주를 담아낸 'Band on the Run'나 드라이빙 강한 드럼과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기대하는 가사를 외치는 'Jet', 가벼운 블루 아이드 소울로 자신을 푸른 새로 비유하는 'Bluebird', 피카소의 자유분방한 삶을 동경하는 'Picasso's Last Words (Drink to Me)'가 그렇습니다. 내가 구르게 내비둬라는 'Let Me Roll It' 같은 곡은 그냥 알아서 가게 내비둬라는 'Let It Be'의 연장선상에 있고요. 즉 존 레논의 가사엔 세상과 맞서러는, 맞짱 뜨자는 의지가 느껴진다면 매카트니의 가사엔 문제에 대한 도피와 낭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간출함과 도피에 대한 매혹 때문에 전반적으로 굉장히 자유롭고 화사한 느낌입니다. (9곡 정도 되는 짧은 앨범 길이도 그렇고요.) 이는 후기 비틀즈의 우울함이나 존 레논의 자기 폭로적 고백나 조지 해리슨의 미친듯한 재능의 폭발과 다른 색다른 맛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걸 들어보면 비틀즈가 어떤 식으로 파워 팝과 나아가 브릿팝이라 불리는 모던 영국 팝스으로 발전하게 됬는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까이기도 무던히 까이고, 레논에 비해 고민 없이 세상을 살아온거 아닌가 싶긴 해도 자본의 논리를 제대로 간파하고 그걸 프로다운 솜씨로 풀어낸 천재였다는 점에서 매카트니는 레논과 다른 점으로 귀감이 되는 것 같습니다. 소편성의 고밀도 팝스라는 명제를 제시함과 동시에 그 완결을 보여준 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