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Marvin Gaye - [What's Going On] (1971)

giantroot2011. 1. 6. 22:42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면, 제가 들은 최초의 흑인 음악은 아버지가 사오신 모타운의 보이즈 II 멘이였습니다.  이들은 (어린 저에게) 굉장한 하모니와 깊은 소울과 가스펠을 선보였고, 그 앨범을 들으면서 흑인 음악에 대한 귀가 스리슬쩍 틔였던 것 같습니다. 정작 제가 초기에 사모았던 흑인 음악들은 보이즈 II 멘과 달리 뭔가 주류에서 벗어난 것들이였습니다. 소울 앨범도 오티스 레딩이나 샤론 존슨 같이 좀 더 거친 박력을 강조하는 쪽을 먼저 샀고, 심지어 제가 최초로 산 모타운 제 앨범은 에리카 바두의 2010년 앨범이였습니다. (...) 이러다보니 마빈 게이는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순위가 미뤄지다가 드디어 2011년 첫 앨범으로 사게 됬습니다. (딜럭스 에디션입니다.)

오티스 레딩와 아이작 헤이스로 대표되는 스택스 소울은 굉장히 거친 박력과 원초적인 에너지를 중시했다면 (이들은 백인 로큰롤과 나아가 인디 록에도 은근히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장 전성기에 소속된 부커 T도 백인 로큰롤 뮤지션이였죠.), 모타운은 부드러운 하모니와 멜로디으로 매끈한 곡의 매력을 중시했습니다. 모타운은 한마디로 SM엔터테먼트 같은 거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였는데 이들은 철저히 상업적으로 계산된 매너와 음악을 추구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나면 심지어 소속된 음악인들의 무대 매너까지 지시할 정도였습니다. 슈프림스와 마빈 게이, 스티비 원더로 터지고 마이클 잭슨이 있던 잭슨 5으로 포텐이 다시 뻥 터졌던 것도 그런 성향 때문일겁니다. 그 떄문에 한때 백인 록 평론가들이 모타운을 디스했는데, 가식적이다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모타운 쪽이 좀 더 돈을 잘 벌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마빈 게이는 그런 돈 잘 버는 모타운의 스타 중 한 명이였습니다. 1960년대엔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울로 인기를 모았던 마빈 게이는 1970년대 들어서 조금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자신의 창조력과 그동안 일궜왔던 음악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What's Going On]은 그 전환기를 알리는 앨범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앨범은 기존의 달콤하면서도 귀에 딱 들어오는 소울에 마빈 게이의 자의식과 복잡한 프로듀싱과 작곡, 풍성한 악기, 치밀한 앨범 설계가 추가되었고, 그 결과 소울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됐습니다.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은 아무도 (심지어 아방가르드를 좋아하는 hidros3님마저도) 이의를 달지 않는 명반에 속하는 앨범입니다. 들으면 확실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콩가와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악기를 복합적으로 사용해 풀어내 멜로디, 재즈와 가스펠의 영역을 탐사하면서 우아한 태도로 잔인한 세상에 대한 씁쓸한 감정과 시선을 말하는 마빈 게이의 소울은 진득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싱글 위주였던 기존 모타운 소울과 달리 치밀하게 조직된 앨범 구조는 한 곡을 들으면 앨범 전체를 듣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앨범이 보이는 세상에 대한 시선은 날카롭진 않습니다. 장님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한 차별을 겪었던 (그리고 흑인에 대한 차별 역시) 스티비 원더와 달리, 마빈 게이는 음... 이 앨범을 내놓을때도 잘 나가는 스타였으니깐요. 물론 그도 흑인으로써 차별을 겪었을테고, 마약 중독이니 파트너의 죽음이니 그런 어려운 일들을 겪었을것이고, 동생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다곤 했지만 그게 거의 개인적이거나 간접 경험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냉정하게 까말하자면 이 앨범에 담긴 마빈 게이의 사회에 대한 시선은 많이 '평면'적입니다. 잔인한 세상에 대한 관찰과 고발에서 사고가 멈추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의 시각은 입체적인 비판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평면적인 인식도 그렇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고 (그런 평면적인 표출로 통해서도 청자가 세상에 대해 재인식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죠.) 마빈 게이로써는 그것이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인식의 최대였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그런 인식 자체가 모타운 소울이라는 틀에서는 일종의 충격이였습니다. 당시 흑인 민권 운동의 대표주자였던 제시 잭슨 목사가 그에 대해 칭찬한 것도 아마 그런 부분이였을겁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스택스 소울 뮤지션들이야 벌써부터 그런 표현을 했지만 (오티스 레딩은 이미 Respect라는 곡으로 흑인의 인권에 대한 자각을 보여줬습니다.) 상업적인 모타운에서 그런 시도를 한 것은 마빈 게이가 최초였고, 거대 음악 산업 아래에서 옹고집을 부린 그의 시도는 후일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음악이 그런 약점들을 가릴만큼 좋습니다. 마빈 게이가 원래 해오던 소울 짬밥이 농후하게 컨셉 앨범 틀에 녹아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그 우아함과 부드러움은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What's Happening Brother>에서 <Flyin' High> 인트로로 이어지는 순간은 숨이 멎을듯한 순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이 흑인 음악을 넘어선 클래식이 된 것도 그 점 때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