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잡담

[Something/Anything?] / [Odessey & Oracle]

giantroot2010. 10. 6. 23:26

Todd Rundgren - [Something/Anything?] (1977, Bearsvill)

토드 런그렌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2000년부터였던가? 아버지가 가지고 계신 일본 하이파이 잡지 번역본에서 24bit 리마스터링된 음반들을 찬양하는 코너에서 말이죠. 물론 베어스빌이라는 레이블도 그 때 알았습니다. 그래서 왠지 무의식 깊숙한 곳에서 '이 앨범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앨범을 구한 것도 일본이군요. 정말 이 앨범은 유달리 일본과 연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24bit 리마스터, 일본 잡지에서 소개, 일본에서 구매.)

아마 서구권 평론가들에게 토드 런그렌의 걸작을 꼽으라고 물으면 [A Wizard, A True Star]와 더불어 이 앨범을 꼽을 겁니다. 다만 다소 난해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A Wizard, A True Star]와 달리, [Something/Anything?]은 파퓰러하다 할 정도로 유려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앨범입니다. 납득이 안 가신다면 지금까지도 토드 런그렌을 먹여 살리고 있는 <Hello It's Me>, <I Saw the Light>가 이 앨범에 담겨 있다는 사실만 해도 이 앨범이 얼마나 파퓰러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수록곡도 제일 많습니다.

한마디로 이 앨범은 토드 런그렌 식 화이트 앨범입니다. 글램 록, 사이키델릭, 하드 록, 포크 팝, 기타 록, 일렉트로닉, 재즈, 라운지, AOR 같은 장르들이 마구 담겨져 있습니다. <Saving Grace>나 <Breathless> 같이 당시로썬 좀 막나간다는 생각이 드는 곡도 있고요. 진짜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앨범을 들으면 의외로 마구잡이가 아닌, 일관된 흐름이 느껴집니다. 다양한 장르와 음향 실험이 등장하지만 뼈대는 단단한 멜로디라는 점이 그런 일관성을 만들어내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정의를 하자면 팝 록이라는 말이 맞겠군요.

아무튼 이 사람은 정말 곡을 잘 쓰는데, <Hello It's Me>, <I Saw the Light> 같은 곡을 들어보시면 알 수 있을겁니다. 진정한 품위있음은 자신의 품위있음을 크게 떠벌리지 않고 기품있는 태도를 유지할때 나오는데, 이 두 곡은 그런 기품이 있습니다. 물론 <Cold Morning Light> 같이 신비로움부터 <Wolfman Jack>와 <Black Maria>, <Slut>처럼 거친 울부짖음까지 다양한 감수성들을 잘 소화한다는 점도 적어야 되겠군요.

글이 갈지자가 됬는데, 이 앨범은 팝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다양한 채널을 얻게 됬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힘 있지만, 기타 중심의 멜로디라는 기본 명제을 먼저 우위에 둔다는 점에서는 빅 스타와 더불어 파워 팝의 시초로도 볼 수 있을거고요. 백화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 앨범이야 많지만 그 중에서도 당연 으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The Zombies - [Odessey & Oracle] (1968, CBS)

시중에 나온 판본이 조낸 많아서 고민하다가 결국 일본판으로 선택한 좀비스의 2집입니다.

이 앨범의 사이키델릭 팝은 굉장히 독자적입니다. 비틀즈나 비치 보이즈가 소리의 탑을 쌓겠다는 집념과 자본빨로 달려든다면, 이 앨범의 사이키델릭은 소박한 느낌입니다. 첫 트랙 <Care Of Cell 44> 같은 곡에서 오케스트라(정확히는 멜로트론)를 쓰는 방법론이나 <A Rose for Emily> 같은 미니멀함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소심하거나 그렇지 않고, 대담하고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면서도 과욕이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는, 담백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앨범 이후 해체했다는 사실이나, 오케스트라도 동원 못하고 멜로트론으로 대체했다는 녹음 에피소드를 생각해보면 이 소박함엔 자본적 한계도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식의 제약이 이 앨범을 명반을 만들어냈습니다.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This Will Be Our Year>, <Time Of The Season>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콜린 블린스턴과 로드 아젠트 콤비의 출중한 작곡 실력과 딱 적절한 수준에서 멈춘 스튜디오 기술이 만나 자유로우면서도 풍성한 소리와 멜로디가 담겨 있는 앨범을 탄생시키게 된 겁니다. 전반적으로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하고 비슷한 느낌이지만, 이 앨범은 화이트 앨범과 달리 제대로 치고 빠집니다. (화이트 앨범은... 기본적으로 더블 앨범이니 치고 빠지는 느낌은 아무래도 적죠. 방만하게 흐드러졌다는게 정확할 듯.)

어쨌든 하프시코드, 보컬 화음, 싱코페이션 박자가 곁들여진 <Care Of Cell 44>, 피아노 한 대로만 처연한 심상을 만들어내는 <A Rose For Emily>, 엇박자를 타고 높이 올라가는 <Brief Candles>, 나중에 유일한 히트곡이 되는, 재즈 풍의 즉흥적인 연주가 돋보이는 <Time Of The Season> 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이 앨범이 얼마나 먼치킨인지 아실수 있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