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은 의외로 구입 순위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뭐랄까 이미 들은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우선 순위가 뒤로 미뤄진다고 할까요. 이미 MP3로 들은 음반일수록 더 게을러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스테레오랩의 [Emperor Tomato Ketchup]도 거기에 속합니다. 예전에 MP3로 듣고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 계속 미뤄졌는데 결국 이번에 중고로 나온 음반을 겟하면서 그 염원이 이뤄졌습니다.
스테레오랩이 처음 등장했을땐 포스트 락이니 락의 미래니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동면에 들어간 지금 사후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락의 미래가 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레티샤 샤디헤르는 블러의 'To the End'에 참여해서 명성을 얻고, 음악사에서도 나름 전설적인 위치를 차지했지만 대세가 됬다고 하기엔 좀... 포스트 락이라는 말도 모과이, 시규어 로스 같은 장르의 음악에게 넘어간 거 같고, 10년이나 지난 지금 그들의 음악은 처음 등장했을때처럼 기묘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차라리 그들은 인디 팝 하위 영역을 개척한 것 같습니다. 캔 풍의 휭키하면서도 미니멀한(벨벳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인용도 포함되어 있는) 그루브와 구조-이 부분은 동료였던 토오터즈의 영향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무그 신시사이저를 동원한 가볍고 매혹적인 빈티지 전자음, 라운지 음악과 프렌치 팝의 달달한 멜로디와 편곡, 비치 보이스의 나른한 사이키델릭 화음, 정치적인 은유가 담겨있는 가사 등 뭔가 모순적인 매력을 지닌 팝스 말이죠.
이는 비슷한 느낌의 플레이밍 립스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플레이밍 립스는 키치적 감수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면, 이들은 좀 더 "예의 바른 유럽 중산층 인문학 전공 지식인" 같습니다. 키치라는 걸 숨기고 우아한 겉포장으로 감싼다고 할까요? 유럽과 미국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군요. 스테레오랩 음악에 프랑스 문화는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니깐요.
곡도 좋지만, 프로듀싱이 꽤 괜찮습니다. 솔직히 토오터즈는 안 좋아하는데, 이 밴드 멤버이자 프로듀서인 존 맥킨타이어가 꽤 멋있게 포스트 모더니즘 적인 뒤섞기에 성공해내고 있습니다. 틴에이지 팬클럽의 [Man-Made]도 그렇고, 이 분 의외로 고전적인 팝에 관심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극과 극의 충돌이여서 다소 맞지 않는 듯한 인상이였던 틴에이지 팬클럽과 달리, 이 쪽은 꽤 쩍쩍 달라붙습니다. 아마 스테레오랩의 본디 지향과 맥킨타이어의 방향이 일치해서 이런 시너지가 나오는 걸지도요.
아무튼 굉장히 개성적인 앨범입니다. 1990년대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 예술의 한 방법으로 대두되었는데, 황금기 힙합과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인용과 뒤섞기가 극에 달한 걸작 중 하나라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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