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dphone Music/리뷰

Arcade Fire - [The Suburb] (2010)

giantroot2010. 9. 1. 20:03

Present Day, Present Time.


아케이드 파이어의 세번째 앨범 제목은 '교외'다. 이 제목은 정말 간결하게 그동안 아케이드 파이어가 걸어왔던 커리어와 새 앨범의 방향을 정하고 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느끼는 희노애락을 신화적인 장중함으로 잡아냈던 1집 [Funeral], 불신과 폭력, 부정으로 얼룩진 세상에 대한 묵시록적인 예언서였던 2집 [Neon Bible]를 떠올려보라.

교외는 현실의 장소다. '장례식'처럼 산 자와 죽은 자가 어우르는 신화적인 장소도 아니며, '네온 성경'이 낭독되는 어두운 교회처럼 묵시록의 장소도 아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주하며 일상을 누리는 곳이다. 동시에 교외는 과거의 장소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필연적으로 교외를 떠나 도시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제작 동기가 리더인 윈 버틀러와 동생이자 멤버인 윌 버틀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미국 텍사스의 교외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그 점을 더욱 강하게 두드러지게 한다.

그렇다. 이번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정서는 '회고'다. 가사부터 그렇다. 전작들이 지금 보고 느끼는 걸 서술한다는 느낌이였다면 이번 작의 가사는 (특히 초반부)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난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을 뿐."라고 읇조리는 오프닝 트랙 'The Surburbs'는 선언적이다.  하지만 아케이드 파이어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주제는 여전하다. 그들은 폭탄, 예술가들을 갉아먹는 흡혈귀 자본가들, 빈 방, 아이들이 없는 도시, 교외에서 일어나는 전쟁, 거친 도심에서 낭비된 인생들, 산 넘어 산으로 뻗어나가는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어린 시절, 사회인이 되던 그 순간, 그리고 순수함이 사라진 사회를 지금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 속에서 아케이드 파이어는 그 순수함이 남아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작곡에서도 기존의 묵직함은 많이 사라지고, 훅이 강조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케이드 파이어 특유의 아우라와 진중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좀 더 몸집을 가볍게 하고 날렵하게 공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가볍게 통통 튀는 피아노 위에 캐치한 합창이 곁들여지는 'The Surburb', 날카로운 맛이 살아있는 직선적인 로큰롤 'Empty Room', 'Month of May'가 대표적이다. 전작과 달리 부드러운 부분도 존재하는데, 'Wasted Hour'는 컨트리 팝이라 할 만한 작곡을 들려준다.

이 앨범은 아케이드 파이어 역사상 가장 많은 곡 (16곡)을 담고 있다. 전반적으로 이 앨범은 느슨한 컨셉 앨범을 취하고 있는데, 밋밋한 부분 없이 잘 풀어내고 있다. 그 중 가장 빛나는 부분은 아무래도 전반부다. 전반부 네 곡은 정말 한 방에 간다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사람을 놓지 않는다. 후반부는 다소 풀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상당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전반부가 전통적인 아케이드 파이어의 송가인 'Half Light' 연작으로 마무리 된다면, 후반부는 그 전통에서 벗어난 'Sprawl'로 연작으로 마무리 된다. 그 중 가장 절정은 당연 블론디를 떠올리게 하는 디스코 리듬과 빈티지 신스로 광활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2부, '(Mountains Beyond Mountains)'일 것이다. 이 곡은 그동안 아케이드 파이어가 만든 곡 중에서 가장 멀리 나갔으면서도 가장 그들다운 곡이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이 곡은 순회 공연 동료였던 LCD 사운드시스템에게서 영감을 받은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은 첫 곡을 'The Suburb'을 간주곡으로 편곡하면서 끝내는데 이는 느슨한 컨셉 앨범이라는 점과 잘 부합하고 있다.

솔직히 고백하겠다. 2집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아케이드 파이어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오늘날 수많은 밴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그 속엔 반짝이는 재능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지만 정작 신뢰할만한 대가를 판별하기엔 어려웠다. (다들 찬양하는 애니멀 콜렉티브에 대해 저어, 하는 심정인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 앨범을 듣고 나서 이들이 그 대가에 속할 밴드라는 확신이 생겼다. 적어도 그들은 1집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있으며,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The Suburb]는 젊은 거장 밴드의 새로운 이정표다.

P.S.1 부제는 [serial experiments lain]의 매화 도입구에서 따왔다.
P.S.2 지금까지 3집까지 시련을 통과한 21세기의 밴드는 고릴라즈, LCD 사운드시스템, 프란츠 페르디난드, 아케이드 파이어 정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