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환각
1982년, 럭비의 고향인 영국 럭비(;;;)에서 온 스페이스멘 3은 불운한 밴드였습니다. 밴드가 살아있을땐 그다지 지지를 못받은데다, 밴드 멤버는 불안정한데다 당시 슈게이징 씬에서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밴드 10년차가 되던 해, 작곡 커플이였던 제이슨 피어슨과 소닉 붐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죠. 결국 이들은 [Recurring]으로 이혼 부부의 합의서 내용처럼 앨범의 반반 나눠 가진뒤 서로 갈 길을 갔습니다.
피어슨은 스피리추얼라이즈드로 주류에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고 (그리고 "미세스 애쉬크로프트" 사건도 포함됩니다. 아 정말 리처드 애쉬크로프트 너는 맥케이브에 대한 태도-이 사람 없으면 넌 황이다 황. 진짜 그거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서 정말...-하고 이 사건, 그리고 솔로 활동-그렇다고 알반처럼 솔로가 끝내는 주는것도 아니잖아?-에 대한 집착을 생각하면 좀 과일촌인듯. 물론 버브는 죽어라 사랑함.) 소닉 붐은 아예 언더그라운드 실험으로 버로우 하다가 최근 MGMT 2집 프로듀서로 재기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둘은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네요. 알반도 콕슨하고 화해하는 21세기인데 좀 화해하면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외국에서도 찬밥인데, 한국에서는 이들은 쉰밥입니다. 듣보잡도 이런 듣보잡이 따로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스피리추얼라이즈드 때문에 그 전에도 간간히 조명 받아 왔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들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진정 재평가 받기 시작한 뮤지션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포스팅에 소개할 [The Perfect Prescription]는 이들의 2집입니다. [Playing With Fire]와 함께 이들의 대표작으로 추방받는 앨범이죠. 동시에 스페이스멘 3에 입문하기에 가장 적합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이 앨범을 플레이어에 걸고 틀면 파워풀하게 몰아붙이는 'Take Me To the Other Side'가 먼저 나옵니다. 타오르는 기타 리프와 약물을 권하는 선동적인 가사가 인상적인 사이키델릭 트랙입니다. 이 파워풀함은 다시 'Things'll Never Be the Same'에서 불타는 퍼즈 톤 와와 드론 기타로 다시 재현됩니다. 'Walkin' With Jesus', 'Come Down Easy'는 약물에 물들여진 블루스/영가이며, 'Ode to Street Hassle'나 아웃트로 트랙인 'Call the Doctor'는 환각 상태의 몽롱함을 사근사근하지만 오싹한 무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9분짜리 'Ecstasy Symphony/Transparent Radiation (Flashback)'은 몽롱한 드론과 시타 사운드로 이국적인 환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보너스 트랙을 제외하자면 [The Perfect Prescription]의 강점은 그 간결함입니다. (보너스 트랙을 제외하면) 8 트랙으로 이뤄진 곡들은 사이키델릭 록이 흔히 빠졌던 지루와 조루가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가장 긴 곡인 'Ecstasy Symphony/Transparent Radiation (Flashback)'조차도 화려하지만 공허한 솔로 플레이나, 귀를 잡아먹을 것 같은 노이즈 덩어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청자를 약빨로 보내고자 하는 (60년대 애시드 록의 유지를 이은) 의지가 (벨벳, MC5, 크램스와 수어사이드를 소급할 수 있는) 펑크의 미니멀리즘과 가차없는 노이즈에 훌륭하게 투과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펑크의 미니멀리즘 아래 감춰져있는 중심 뼈대는 놀랍게도 블루스와 소울입니다. 우선 몇몇 트랙에서 들리는 금관악기는 스택스 소울의 대표주자였던 오티스 레딩의 작업들을 떠오르게 하고 (보너스 트랙 Soul 1은 굉장히 본격적입니다.), 제이슨 피어슨과 소닉 붐의 선동적인 보컬은 블루스와 소울 창법(그리고 MC5)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듯합니다. 사실 이렇게 멀리가지 않아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데 'Walkin' With Jesus'라는 제목에서 영가를 떠올리지 않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로큰롤의 뿌리가 블루스와 소울, 더 나아가 흑인 영가에서 비롯됬다는 걸 생각해볼때 영국 출신인 이들의 이런 재해석과 인용은 흥미롭습니다. 이런 선택은 사후 스피리추얼라이즈드에 드러나기 시작한 약물 가스펠이 어떻게 시작됬는지에 대한 사료로써도 충분합니다.
비록 2009년에 재발매를 하면서도 리마스터링은 아예 하지도 않은 Fire 레코드의 만행으로 좋은 음질로 들지 못했지만, [The Perfect Prescription]은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약물입니다. 확실히 피어슨이 이후 이어간 스피리추얼라이즈드도 좋았지만, 이 앨범의 간결함이 내뿜는 환각과 도취는 스피리추얼라이즈드의 모든 앨범들을 대적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니까 Fire 레코드 님들, 리마스터링 좀 해주면 어디 덧납니까?
P.S.1 소닉 붐 2002년 인터뷰를 보니 스피리추얼라이즈드를 'Pomp Gospell Rocker'라고 비난했더라고요. 하하하... (그래도 전 스피리추얼라이드 좋아합니다.) 뭐 2005년에 소닉 붐 쪽에서 화해하려고 했다는 소식을 볼때 소닉 붐은 이젠 큰 악감정이 없는 듯합니다.
P.S.2 [Playing With Fire]도 한 번 리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존 UK에서 주문하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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