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콩그레스
The Congress
8
- 감독
- 아리 폴먼
- 출연
- 로빈 라이트, 하비 키이텔, 존 햄, 폴 지아마티, 코디 스미스 맥피
- 정보
- 애니메이션, SF | 이스라엘, 독일, 폴란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벨기에 | 120 분 | -
아리 풀먼의 [더 콩그레스]는 풀먼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혼돈스러운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던 전작 [바시르와 왈츠를]와 달리 혼돈스러운 미래로 향하는 애니다. 아니 애니라 하기에도 미묘한게, 영화의 50% 정도는 실사로 구성되어 있다. [솔라리스]로 유명한 스타니스와프 렘의 [미래학적 회의]를 느슨하게 각색한 이 영화는 원작과 다르게 (원작이 번역되지 않아서 뭐라 말할순 없지만 적어도 욘 티키라는 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며 배경도 코스타리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끌어오고 있다.
그 결과 영화는 '환각'과 '환영'을 제외하고는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 로빈 라이트라는 헐리웃 여배우가 있다. 그렇다. 그 로빈 라이트다. 하지만 영화 속 로빈 라이트는 좀 다른 면이 있는데 이는 나중에 언급하도록 하겠다. 한때 잘 나가는 배우였지만 이젠 하락세에 접어든 로빈 라이트는 파라마운트를 패러디한 미라마운트에서 자신의 이미지와 연기를 디지털화하자는 계약을 제안받는다. 대신 이 계약을 하면 이후로 평생동안 연기를 못한다는 조건이 달리고 로빈은 고민 끝에 수락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나이를 먹은 로빈은 미라마운트에서 진행하는 미래학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구역'으로 들어간다.
물론 영화 속 로빈 라이트는 실제 로빈 라이트하고는 다르다. 이혼 경력에 딸과 아들이 있는건 맞지만 딸과 아들 이름도 모두 다르고 (배우도 요새 아역으로 인지도를 얻고 있는 코디 스밋 맥피가 맡았다.) 결정적으로 [포레스트 검프] (와 그를 패러디한 영화]가 최고의 절정기였던건 맞지만 영화 속 로빈과 달리 인기가 사그라든 이후로도 주조연도 간간히 맡았고 좋은 연기력으로 괜찮은 커리어를 유지해왔다. 얼굴도 품위있게 늙어가는 편에 속하고. 심지어 사그라든 지금도 한국에서도 포스터에 이름을 걸만한 배우 정도는 된다. 슬프게도 로빈 라이트보다도 더 커리어가 쪼그라든 헐리웃 배우도 많다. 멕 라이언이라던가.
하지만 영화 속 로빈이 실제 로빈를 반영하고 있다라는 얘기가 틀린 것도 아니다. 모션 캡처를 두번이나 맡기도 했고 무엇보다 2010년대 기준으로는 핫함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헐리웃의 화제에서는 벗어난 배우라는건 확실하다. 애시당초 여배우들은 나이와 소모 속도가 빠르기도 했고. 물론 외모와 달리 딱히 대작이나 예쁜 역에 집착하지 않고 다양한 영화에 나오며 연기력 항상을 도모한 실제 로빈 라이트 커리어 선택도 대중에서 멀어지게 한 감도 있다. 이런 점에서 로빈 라이트의 캐스팅은 제법 그럴싸하다.
[더 콩그레스]가 펼치는 디스토피아은 벤야민적인 디스토피아라 할 만하다. 발터 벤야민은 영화나 사진의 복제가 어떻게 예술을 변화시켰는지를 최초로 밝혀낸 학자다. 그 점에서 배우의 이미지와 연기를 첨단기술으로 복제해 지적 재산권으로 다룬다는 영화의 설정은 분명 벤야민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에서 경고했던 거짓 아우라-그 예술작품과 동일한 공간과 시간대에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무언가'-인 스타 아우라와 연관 관계가 있다.
즉 [더 콩그레스]는 거짓 아우라인 스타 아우라가 만약 상품화되고 나아가 그 아우라로 자기 정체성을 변하게 할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진화 가능성과 디지털화를 언급하면서 시작한 이 변화는 작중 영화사는 그 스타 아우라를 가지고 애니메이션 구역을 만들어 권력을 휘두르고 무한한 문화상품을 찍어내기 시작하는 수준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 사람들이 거짓 아우라 그 자체로 변할 수 있게하는 약까지 개발해 팔기 시작한다.
영화는 그 거짓 아우라에 매혹된 세계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게 제법 매혹적이다. 실사 세계 어딘가에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그곳은 환각의 제의를 거쳐 들어갈 수 있으며 실사는 일종의 거짓 아우라로 등장한다. 모션 캡처 애니메이터들과 감독들은 하나의 공장처럼 운영된다. 그리고 그 세계를 그려내는 애니메이션은 [렌과 스팀피]나 [비비스와 버트헤드] 같은 MTV 애니메이션 혹은 1960년대 로버트 크럼이나 랄프 바크시나 미국 사이키델릭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게 하는 현란한 매력이 있다.
동시에 이 애니메이션은 거짓 아우라에 취해 살아가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하고 있다. 이런 대기업이 생산해 파는 거짓 아우라와 정체성에 매료된 로빈의 딸 사라는 더이상 로빈을 알아보지 못하며, 20년동안 로빈 라이트 부서에서 애니메이터으로 일해온 딜런은 외려 '살아있는' 진짜 로빈에 집착하게 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엔 전작 [바시르와 왈츠를]처럼 후반부에 다시 등장하는 초췌해진 실사 파트는 직전 애니메이션 파트의 현란함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거짓 아우라로 피폐해진 인간 현실을 강렬한 고발을 이뤄내고 있다.
하지만 [더 콩그레스]가 그 매혹과 비판을 온전히 이뤄냈는지는 모르겠다. 먼저 헐리웃을 다루는 실사 부분이 다소 도식적이고 안이하다는 몇몇 평자의 비판은 타당하다. 로빈은 분명 있을법한 헐리웃 배우들의 현실이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조금 뻔하다. 마지막 실사 연기를 하며 회한에 찬 로빈이나 연날리기와 비행을 통한 은유은 매력적이였지만 전반적으로 덜 도식적인 방식이 있었을건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극의 주체가 되는 로빈도 냉동 전후론 다소 맥없이 설명을 들으며 끌려다닌다는 느낌이 있다. 주제를 담당하고 있던 딜런 캐릭터도 슬그머니 퇴장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리고 배우 이미지 장사에서 시작한 벤야민적인 디스토피아가 카멜레온처럼 휙휙 바뀌는 자기 정체성이 모호한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다소 미심쩍은 부분도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말은 되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중간 과정이 휙하고 빠진 것 같다. 애니메이션 구역이 어떻게 실사 구역(현실)로 퍼져 나갔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더 필요했다.
그래도 마지막 결말은 제법 감동적이고 성숙해서 좋았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아들조차 거짓 아우라에 넘어가버린 로빈은 자신도 거짓 아우라의 세계로 다시 넘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로빈의 선택은 바로 '아들'이 되는 것이다. 로빈은 거짓 아우라를 역으로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애런의 생을 경험한 로빈은 마침내 아들과 마주하게 된다.
[더 콩그레스]가 [바시르와 왈츠]를 뛰어넘을 역대급 걸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엔 결함들이 많고 헛발질을 한 흔적들이 보인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고 욕심이 과하긴 했지만 강렬한 비주얼과 야심은 충분히 인정할만하며 결말의 감흥은 제법 좋았다고 생각한다. 천생 호불호가 갈릴 컬트로 될 운명을 타고난 애니메이션이지만 아리 풀먼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P.S.1 퍼블릭 이미지의 'That's Not Love Song'과 OMD의 'Enola Gay'를 멋지게 써먹었던 [바시르와 왈츠를] 감독답게 음악의 질이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맥스 리히터의 사운드트랙도 좋다.
P.S.2 장안의 화제(?)인 돌비 ATMOS를 적용한 작품이라고 한다. 프로듀서 왈. 공짜로 믹싱하게 해줬어요라고....
P.S.3. 중간에 작화를 갈아엎었다고 한다. 원래는 이런 느낌이였다고... http://www.animationmagazine.net/wordpress/wp-content/uploads/the-congress-post-3.jpg
P.S.4.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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