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핑크 플로이드 전집이 새로운 리마스터링으로 재발매 됬더라고요. 거기에 곁다리로 시드 바렛 카달로그도 전부 리마스터링 됬고. 덕분에 제가 사들인 Wish You...이거 애매하게 됬습니다 -0- 그래도 조촐한 기념으로 이런 포스팅을..
로저 워터스의 핑크 플로이드가 너무 알려지다 못해 이젠 클리쉐까지 된 느낌이라면 시드 바렛의 핑크 플로이드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존재입니다. 바렛의 핑플은 두번째 앨범을 끝으로 (사실 배릿은 핑플 두번째 앨범은 거의 참여하질 못했으니 온전한 걸로만 따지자면 파이퍼 앨범이 유일합니다.) 단명하기도 했고, 시드 바렛도 두 앨범 발표 이후엔 은둔하다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죠.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생각나는 사람입니다.
시드 바렛 시절의 핑크 플로이드는 블루스 기운이 덜 나는 대신, 사이키델릭으로 가득합니다. 루이스 캐럴과 케네스 그레이엄 (핑플 첫 앨범 제목부터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챕터 제목인 '새벽녘에 피리 부는 목신'이니깐요.) 같은 영국 동화 작가들에게서 힌트를 얻은 유아적 사이키델릭이라고 할까요. 키플링의 시와 동화들을 가지고 앨범을 만든 도노반이나 영국 민요에서 영감을 얻은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하고 비슷한 과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미국 아해들의 음악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감수성이죠. 신비롭고 음습하고 축축하고... 섬나라 종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광기. 바렛의 광기는 폭발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을 향한 조곤조곤한 광기입니다. 로저 워터스의 사회에 대해 침을 뱉는 외적인 광기하고는 멀죠.
물론 워터스의 핑플하고 공유하고 있은 음악적 특성들도 분명 있습니다. 일단 위에도 적었지만 광기라는 테마가 이때부터 지배했다는 걸 알 수 있고, 여기 올린 'Interstellar Overdrive'의 극적이고 야심만만한 스케일로 이뤄진 즉흥 연주는 [The Wall]과 [Animals] 같은 워터스가 만들어낸 컨셉 앨범과 수록곡들의 시금석이라 볼 수 있을겁니다. 수록곡 'Bike'와 'Astronomy Domine'의 탈력적인 엇박자와 부유하는 멜로디를 다양한 소리들로 엮어서 음습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부분은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기조에 큰 영향을 준 게 분명합니다.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The Another side of the Pink Floyd입니다. 예전에 트위터에도 적었듯이 "핑플을 로저 워터스로 기억하는 사람은 입문자, 시드 바렛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좀 들은 사람"라 말할 수 있겠네요. 또 영국 사이키델릭을 말할때 빼놓을수 없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시드 바렛은 탈퇴 이후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냈는데 당시엔 별로 주목받진 못했습니다. 8-90년대 포스트 펑크~얼터너티브 시절 후배들이 발굴해내 솔로도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라서게 된거죠. 그나마 가장 알려진 음반이라면 역시 [The Madcap Laugh]일겁니다. 핑플 멤버들과 소프트 머신이 도와줘서 만든 이 앨범은 너저분함 그 자체입니다. 녹음은 정돈되지 않았고 바렛의 보컬은 찌들어있는데다 음정도 아슬아슬합니다. 막귀여도 쉽게 알아차릴 정도에요. 정돈되지 않은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랄까요. 대부분 바렛 혼자서 어쿠스틱 기타 가지고 뚱땅거리는 앨범이지만 여기에 올린 'No Good Trying'하고 'No Man's Land'는 이런 구성에서 벗어난 구성(소프트 머신이 백 밴드로 참여했습니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인상이 강한 곡도 이 둘이고요.
이 음반은 영국판 알렉산더 스킵 스펜서의 [Oar]라고 할만합니다. 음악적인 구성이나 무드가 완전 판박이에요. 포크/컨트리인데 괴상한 코드와 공감각적인 소리 구성을 집어넣어 만든 사이키델릭 포크에 가사는 난해하기 그지 없습니다. ('Dark Globe'에서는 조이스를 인용합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앨범이지만 (게으르고 지겹고 나른해서 듣고 있노라면 심신이 축축 처집니다.) 한 번 들으면 푹 빠지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심지어 잘 나가는 밴드 리더였다가 약물과 광기로 붕괴됬다는 개인사도 똑같죠. 핑플 1집의 에너지는 쏙 빠진 사이키 포크 팝 앨범을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시드 바렛은 이렇게 잊혀졌지만, 그가 남긴 유산들은 재야에서 암약하던 후배들의 손에서 네오 사이키델릭 팝으로 재정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 보이즈, 비트 해프닝, 플레이밍 립스, 요 라 텡고, XTC, 머큐리 레브, 티어드롭 익스플로전 (=줄리언 코프), 애니멀 콜렉티브 같은 밴드들이 시드 바렛의 유산을 재조립해 불멸의 명성을 누리게 됬습니다. 지금 들어도 이 앨범은 참 신비한 앨범이에요. 자주 꺼내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간간히 들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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