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Season/일상/잡담

안녕, 3대 이쁜이

giantroot2023. 11. 27. 23:48

(2007.0?~2023.11.26)

 

*제가 블로그에서는 개인적인 얘기는 잘 안 하려고 하고, 여러모로 트위터에 집중하느라 뜸해진 감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이번 일은 블로그에 적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적어봅니다.

 

저희 가족이 키우고 있던 퍼그 이쁜이가 2023년 11월 26일 6시 20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이도 16살에 지난 한 달 사이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긴 했지만, 좀 더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떠나버렸네요. 특히 2022년 여름부터 제가 부모님과 이쁜이랑 떨어져 살게 되었기에 세상을 떠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대신 지켜봐 주긴 했습니다.

 

이번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쁜이는 3대째입니다. 2대가 집을 나가 사라진 후, 힘들어하던 가족들이 유기견 센터에서 발견하고 데려온 개였죠. 제가 그때 데리고 올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성남 모란 유기견 보호 센터에서 데려올 때, 어머니랑 저를 경계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솔직히 그 당시엔 2대 이쁜이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던 시절이라, 낯설기도 했고 3대 이쁜이는 성격이 까칠해서 친해지는 데 은근히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차를 타고 버려진 개 아니었나 싶었더라고요. 차를 탈 때마다 상당히 신경질적으로 변했습니다. 낑낑거리고 난리도 아니었죠.

 

성격은 죽을때까지 변하지 않더라고요. 처음 만날때도 앙칼지게 짖어대기도 했고 많이 친해진 뒤로도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으르렁거리고 물려고 하기도 했고, 솔직히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산책 나갈때도 앞서나가려고 해서 진땀을 흘렀던 기억이 있네요. (저보다는 어머니나 형이 그런 경험이 많았습니다.) 서열을 따랐는지 저보다는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훨씬 복종하는 개였고요. 그래도 어느 순간엔 저희나 개나 서로에게 적응해서 없으면 허전한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곰살맞게 구는 개는 아니었지만 제가 방이나 소파에서 자고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올라와 낑겨서 자기도 했던 기억이 나네요.

 

3대 이쁜이는 그동안 키운 이쁜이 중에서는 가장 오래 저희 가족과 같이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교를 다니고 졸업하고, 다시 대학에 들어갈때도 쭉 함께였으니까요. 그 세월 동안 이쁜이는 갓 한 살난 어린 개에서 성견으로, 노견로 늙어갔습니다. 눈도 잘 안 보이게 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움직이는 것도 둔해지고... 노견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와중에 똘이라는 새로운 퍼그가 들어와서 똘이의 장난에 시달리기도 했고요. 솔직히 3대 이쁜이가 16세까지 산 건 똘이 공도 큰 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웃음)

 

사실 외가쪽 친척이 키우던 개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 우리 개도 저렇게 이별할 순간이 오겠구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키우던 개와의 이별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1대와 2대와의 이별은 떠나보내는게 너무 급작스러워서 아직도 극복 못하고 있는 트라우마에 가까웠습니다. 3대 이쁜이와의 이별은 예상보다 조금 빨리 다가오긴 했지만 그래도 예정된 작별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특히 제가 독립하고 난 뒤로 자주 볼 수 없게 되면서 언젠가 내가 없을 때 저 개는 세상을 떠나겠지. 그래도 그 순간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와버렸네요.

 

3대 이쁜이는 그래도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20살 너머까지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평균 퍼그 수명보다 좀 더 살았으니까. 가족 모두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최대한 주려고 했으니까. 사진이랑 영상도 많이 남겨놓으려고 했으니까. 그래서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눈물이 나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희석되겠죠. 이 상실감도 견딜만한 수준으로 내려오겠죠. 하지만 그러기 전에 이 감정과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추억으로 남겨두려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네요. 이쁜이와의 추억은 블로그에다 별로 쓰지 않았기에 이 글이 뭔가 뜬금없고 감정적이라고 느끼겠지만, 그래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무덤이 있어서 추억할 곳이 있다는 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쁜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 자연으로 돌아가겠지만, 우리가 나눈 사랑은 영원히 남을거라고, 까칠하고도 고고한 그 존재감과 따스함은 죽을때까지 잊히지 않을 거라고 전해주고 싶네요.

 

안녕, 3대 이쁜아. 그동안 고마웠어. 사랑해.

 

 

'Long Season > 일상/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트위터가 망하면 어쩌나  (0) 2023.03.13
20210812 근황  (0) 2021.08.12
20201202  (0) 2020.12.02
20201109 코로나-19 시대의 일상  (0) 2020.11.09
20200626  (0) 2020.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