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Season/여행 기록

2010년 일본 후쿠오카/가고시마/야쿠시마 여행 04 (후쿠오카, 終)

giantroot2010. 10. 2. 21:51
2010/09/26 - [Long Season/여행 기록] - 2010년 일본 후쿠오카/가고시마/야쿠시마 여행 01 (출발 ~ 야쿠시마로)
2010/09/30 - [Long Season/여행 기록] - 2010년 일본 후쿠오카/가고시마/야쿠시마 여행 02 (야쿠시마와 미야노우라다케 산행)
2010/09/30 - [Long Season/여행 기록] - 2010년 일본 후쿠오카/가고시마/야쿠시마 여행 03 (가고시마 RETURNZ)

사실 야쿠시마 다음으로 가고 싶었던 곳은 바로 후쿠오카였습니다. 일본에서 음반을 지르고 싶었는데다, 후쿠오카 음반점이 의외로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일정 마지막 날, 후쿠오카에 들러 관광+쇼핑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야간 고속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텐진 도착한 그 날 아침은 숙소 잡느라 꽤 고생했습니다. 결국 비지니스 호텔에서 자게 됬는데, 더블베드 (...)였습니다. 체크인이 2시여서 아침을 요시노야에서 규동을 먹고, 슬슬 텐진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밥을 먹어도 시간이 정말 남아서 시간 죽이느라 애썼습니다.

처음 들어간 곳은 후쿠오카 쥰쿠도 서점이였는데, 한국으로 말하자면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데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실내 장식이 은근히 고풍스러웠습니다. 아주 튀는 수준은 아니였는데 책장이나 계산대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여기선 저희 형의 선물로 眞 [에일리언 9] 컴플릿 셋으로 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키토 모히로 작품들을 사야 했던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0<-<

쥰쿠도 서점 지하엔 인터넷 카페와 CD점, 그리고 게임 판매점이 있었는데, CD점은 중고와 신품 모두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서니 데이 서비스는... 신품 밖에 없더라고요. 가고시마 HMV에선 소녀시대를 봤는데, 여기선 들어가자마자 카라가 절 반겨주더라고요. 한국 걸 그룹에 대한 관심이 괜한 허풍은 아니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 판매점은 중고 서점과 겸해있었는데, 누구나 받아들이는 꿈의 클럽 장식으로 이뤄진 엑박360이 헤일로 리치를 홍보하는 걸 봤습니다. 그때 '헤일로 리치는 누구나 받아들입니다'라는 드립을 정말로 시전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뱅퀴시 데모. 삼돌이 데모로 플레이 해봤는데, 게임이 전반적으로 미묘하게 가볍다,라는 느낌이였습니다. 조작감 타격감 모두요. 나쁜건 아닌데, UI가 번잡하다라는 느낌도 받은 것 같네요. 옆에선 게이온 그녀들이 열씨미 홍보중...

쥰쿠도 나와서 조금 걸어서 이번엔 츠타야를 갔습니다. 전 음악 CD 렌탈하는데는 여기서 처음 봤습니다. CD 렌탈은 커녕 판매조차 보기 힘든 한국에 있다가 이런 렌탈 가게를 보니 꽤 신기했습니다. 물론 DVD/만화 렌탈도 했는데 종류가 상당히 다양한데다 이럴땐 이런 영화 어떨까요? 식의 추천 코너도 있어서 찾아보기 편하더라고요. 여기서 잠시 일본판 DVD 뒷커버 성우 캐스팅을 보면서 시간을 때웠습니다. CD/DVD 판매도 했는데 똑같은 설명은 생략합니다.

길을 가다가 타워 레코드가 나왔지만 문을 열려면 또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일본식 라면을 먹으러 갔습니다. 이치메이 라면집이라는 곳인데... 여행 기간 동안 가본 음식점 중에서 가장 특이한 곳이였습니다. 입구에서 주문할 음식을 자판기에서 뽑은 뒤, 면회소 같은 창구에 앉아서 라면 스타일을 결정하고 라면을 기다리다 나오면 먹습니다. 흔히 라면과 규동을 일본식 패스트푸드,라고 그러는데 요시노야와 더불어 옛 일본인들이 어떤 식으로 일본식 패스트푸드 소비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인이 된 듯한 느낌은 아니고;) 라면 맛은 맛있었습니다. 짜고 느끼하긴 했지만, 한국에서도 일본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는지라 적응은 되더라고요.

후쿠오카 타워 레코드. 3층 짜리였는데, 3층은 DVD 샵이여서 과감히 패스했고 1,2층은 정말 굉장했습니다. 1층은 일본 음악을 팔고 2층은 해외 음악을 팔던데, 양이나 정리 해놓은게 빈틈을 보이지 않더라고요. 석원 님이 몇 번 언급하신 적 있는 '어른의 록'라는 잡지 (맞나?) 특집용 6-70년 올드 로크 코너부터 시작해 새로 나온 해외 인디 신보, 자국 밴드들 싱글과 앨범, 과거 유명했던 일본 뮤지션들의 명반들까지 다양한 음반들이 수북히 쌓여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이성을 잃고 지를뻔했으나, 중고 음반을 생각하고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아라이 유미 히코우키 쿠모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신품이였는데도 품절 상태였습니다.

젠...젠장.  일본놈들, 내가 오는 걸 알고 히코우키 쿠모 다 숨겨놓고 없다고 말하는거 아니야?
딱 이런 심정이였습니다.

호텔 체크인하러 돌아가 짐을 풀고, 삼촌은 남고 저 혼자 석원 님에게 (정말 석원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추석에 초면에 전화로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친절하게 응대해주셨습니다.) 얻은 후쿠오카 음반점 탐방을 나섰습니다. 먼저 간 곳은 그루빈 본점인데 여기는 좀 많이 해멨습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어서 커플을 잡고 물어봤더니, 그 커플이 직접 길을 안내해주더라고요. 좀 멀더라고요; 20분 걸렸나 그랬을 겁니다.

그루빈 본점. 의외로 길쭉한 가게였는데 (크기는 향보다 큰 수준?) 타워 레코드가 번쩍번쩍한 느낌이였다면, 그루빈은 소박하면서도 덕 포스가 강한 느낌이였습니다. 그러니까 타워 레코드가 힙스터이시하다면, 그루빈은 덕후스럽다고 할까요? 주인 아줌마 귀찮게 하면서 (민폐는 절대 아니고 뭐뭐 있냐고 물어보는 정도.) 위시 리스트 물품을 마구 찾았는데 결국 나온 건 유카단 (憂歌団), 소카베 케이이치 밴드, 오오타키 에이이치 정도 였습니다. 유카단은 좀 비싸게 불렀고, 오오타키 에이이치는 처음에 살려고 했다가 일정 금액 이상 아니면 카드가 안 되는 바람에 (...)  결국 소카베 케이이치 밴드만 겟하고 나왔습니다.

얻는 걸 얻지 못해서 걸어서 후쿠오카 북오프 분점에 들어갔습니다. 여기도 1순위는 없었는데, 살롱 뮤직의 매쉬 앨범이 있더라고요. 평소에 듣고 싶었던 앨범인지라 겟 했습니다. 이땐 뭐랄까 정신이 홀린듯한 느낌이였습니다. 츠타야 분점도 갔지만 성과는 동일.

보더라인 레코드. 개인적으로 그날 방문한 일본 레코드 샵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었던 곳이였습니다. 가게 자체는 그루빈하고 비슷한 중고 음반 상점이였습니다. 다만 해외 중고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였는데, 여기서는 좀비스의 [Odessey & Oracle]와 토드 런그렌의 [Something/Anything?] (24bit 리마스터 종이 자켓반)을 구했습니다. 계산하면서 주인장하고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 역시 음악은 만국 공통어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만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 보니 서니 데이 서비스도 취급하고 있었는데 그땐 몰랐습니다 (... 이게 다 일정 때문입니다.

티르코 마켓도 갔는데 여긴 오피스텔이 있던 중고 디깅 전문 샵이더라고요. DJ들이 좋아할법 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딜가나 음반 가게 주인들은 뭔가 범상치 않은 포스를 뿜고 있다는 진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PARKS였는데, 전철 타고 이동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게도 500엔이 있어서 하루권을 끊었습니다.) 다른데보다 동네 레코드 샵 같다는 느낌이였는데 (그래도 퍼플레코드 정도 됩니다.), 여기서도 득템 실패. 여기서 왜 득템 하는데 실패했는지 알게 됬는데, 딴건 없고 인기가 좋아서였습니다. 아라이 유미는 코발트 아워가 있었지만 히코우키쿠모가 아니여서 포기.

그리고 타워 레코드로 돌아와 열받아 노 에이지 신보 일판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신품 가격은 언제나 그랬듯이 비쌌지만그래도 서니 데이 서비스보단 싸! 젠장! 그동안 고생한 나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먹으려음반을 지르려고 간 게 아니고, 소유한 돈도 정말 적었기 때문에 (그나마 용돈 땡겨서 써도) 막상 일본 와서도 제대로 지르질 못했습니다. 일본 여행 가면 마구 지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못하더라고요. 돈을 벌고 있는게 아니니 당연한 현실이겠죠. 그래도 그 제한된 돈 내에서 정말 만족스러운 음반을 고르려고 노력했는데 집에 와서 들어보니 다행히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아서 안심이 됬습니다. 다만 후쿠오카가 넘버 걸 같은 밴드나 시이나 링고를 배출한, 로컬 씬으로도 나름 명망이 있는 곳인데 그런 부분을 느끼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체력적으로 후달려서 음반점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 것도 아쉽고요.

그렇게 호텔로 백해서 저녁을 먹고 잤습니다.

다음날은 요시노야에서 밥을 먹고 페리를 타러 항구로 갔습니다. 가다가 만다라케 보고 '아 저기 가볼껄'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숙소하고 너무 멀어서... 이번엔 고속선이 아니라, 유람선를 타고 갔는데 개인적으로 고속선을 돌려줘!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배 자체는 정말 좋았는데, 거기서 또 멀미했거든요 -0-;; 그런데 사람이 정말 많더라고요. 일본에서 놀려온 한국인 대학생부터, 한국인 아줌마 관광객, 일본인 관광객, 심지어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관광하려는 서양인 관광객도 있었습니다. 멀미하긴 했지만 그래도 별탈 없이 부산에 도착했고, 그렇게 제 첫번째 일본 여행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일본에 대한 제 소감을 적어보자면...

일본은 모든게 철저히 정리정돈된 나라라는 느낌이였습니다. 아파트나, 일반 주택이나, 길이나, 가게나 모든게 찾기 쉽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었냐고요? 어느 정도는요. 확실히 정돈되어 있으니 관광하기엔 정말 편하더라고요. 길거리의 사람들도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서 후쿠오카에서도, 가고시마에서도, 야쿠시마에서도 원하는 장소도 잘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뭐랄까 뭔가 억눌려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깐 한국에서 느낄 수 없는 답답한 무언가가 느껴졌다는 느낌. 지나치게 잘 정돈되어서 작위감이라는게 느껴졌달까요. 이런 식으로 짧게 여행하는 건 괜찮지만 평생 거기로 살라면 좀 답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물가가 조낸 비싸! 일본산 만화나 게임을 하면서 느꼈던 일본 문화의 정체를 좀 더 알 수 있었다고 할까요.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느끼는가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꽤나 이색적인 경험이였습니다.

그 외 해외 문물을 자기 것으로 체화한 풍경 (큐슈, 그것도 메이지 유신 때 중심이였던 사쓰마에서도 준거지를 갔으니 그 현상이 두드러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을 보면서 꽤 신선한 쇼크를 받기도 했고, 야쿠시마에서는 오래간만에 고생하면서 자연의 풍광 (개인적으로 등산 좋아하지 않는데도 정말 좋았습니다.)을 느낀 것도 좋은 경험이였습니다. 정말 큐슈 구경은 제대로 하고 왔습니다.

다음에 일본에 가본다면 도쿄를 가고 싶네요.